7000만불 수출탑 수상으로 석탑산업훈장 정부로 부터 받아, 향토기업의 대들보 역할
1976년 39세 나이로 광복교회 장로 임직
DSR(주)대표 이사인 기독경제인으로서의 실천적 삶의 전도 역할
본지는 지난해 상공일 날에 정부로 부터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한 홍순모 장로(DSR(주), DSR제강(주) 회장)를 지난 1월 10일 롯데호텔에서 만나 보았다.
지난해 연말부터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자랑할 것이 못된다고 거절하시다가 21세기포럼 사무총장 임현모 장로가 권유하여 자리를 겨우 마련,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 : 신이건 장로 / 기록·사진:이상민 기자>
△내 가족의 집보다 교회 목사님의 사택 부터!
올해 71세의 나이인 홍 장로는 지난 1976년 39세의 나이로 광복교회 장로로 임직하여 1991년 12월 1일 부산성민교회를 건축하며, 성민교회 장로로 이직 후 17년간 섬겨오다 지난 2007년 12월 31일 부산 성민교회 장로로, 장로임직 31년을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홍 장로는 기독경영인으로서 주의 종으로 섬기며 교회를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고향이 제주도인 홍 장로의 신앙은 철저한 대물림 믿음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 장로 집안이다.
홍 장로는 귀한 향유옥합을 주님 발앞에 깨트려 드린 마리아처럼, 아버지가 “내 가족의 집보다 교회 목사님의 사택부터 먼저 수리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제주도 한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홍 장로는, 일제시대때 목포에 잠시 머물다 1960년 부산으로 내려와, 1965년 지금의 DSR(주)인 대성제강공업(주)을 설립하였고, 1974년 1월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산지를 다스려 나갔다.
기독경제인으로서 교회에 많은 헌금을 해서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셨는데, 왜 간증을 안하느냐는 질문에 “잘못하면 내자랑 하는거 같아 간증을 안한다”라고 말했다.
가족관계로는 아내와 3남을 두고 있으며, 아들 2명이 DSR(주)의 사업을 잇고 있다.
홍장로는 현재 부산상공회의소 19대 의원, 성민교회 은퇴장로, 녹산공단 경영자협의회 자문위원등을 지내고 있으며, 한국·호주 기독교 선교회 이사로서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크리스천 21세기 포럼 창립의 중추적 역할
홍 장로가 창립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크리스찬 21세기 포럼은 매월 마지막 월요일에 부산교계 장로 20명 정도가 모여서 밥을 먹던 모임이, ‘이렇게 모여서 밥만 먹을게 아니라 뭐 하나라도 해봅시다’ 해서 발전한 것이 21세기 포럼이 되었고, 현재 21세기 포럼은 섬기고 실천해 주는 단체로 유명하다. 크리스천 21세기 포럼 이사회는 마부노호 선주 안현수 사장(50)에게 이사회 기금으로 위로금 일천만원을(10,000,000원)을 보조하는등 마부노호 선원구출에 앞장섰고, 주민들과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충남 태안 앞바다의 기름유출 사건에도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었다. 홍 장로는 크리스천 21세기 포럼이 명실공히 부산의 실천적 전도의 최고 모임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홍장로의 DSR(주), DSR제강(주)의 연혁
홍 장로가 회장으로 있는 섬유 로프회사 DSR(주)는 1965년 4월 대성제강공업(주)로 설립되어 1972년 6월 참치연승(LONG LINE)생산 개시를 시작으로, 1974년 1월 홍장로가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무역업 등록을 하였고, 1976년 3월에 국방부 조달본부 우수업체로 선정되었으며, 1976년 4월 공진청 품질관리업체로 선정, 1979년 11월에는 수출의 날 수출유공자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또, 1982년 2월 어망류 최다 수출액을 기록하며 수산청장 표창장을 수상하였고, 1990년 1월 N.K(일본해사협회)의 공장승인을 받고, 1990년 8월에 순천공장을 준공하였으며, 1996년 12월 스테인리스 공장 준공, 2000년 5월 DSR(주)로 회사명을 변경하였다. 2000년 8월 SuperMax Rope 개발하였고, 2001년 1월 이탈리아 선급협회(RINA)공장승인을 받았으며, 2002년 11월 부산본사 및 공장 이전 (녹산국가산업단지내), 2003년 8월 STS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어, 와이어 로프회사 DSR제강(주)는 1971년 9월 삼화제강(주)로 설립되어, 1977년 9월 로이드 선급협회(LLOYD‘S) 인정 공장승인을 받았고, 1981년 7월 미국선급협회(ABS) 인정 공장승인, 1981년 9월 한국선급협회(KR) 인정 공장승인을 받았다. 1981년 10월에 상호명을 천기제강(주)로 변경 하였으며, 1982년 10월 한국철강협회 가입, 1983년 11월 프랑스선급협회(BV) 인정 공장승인, 1985년 6월 미국석유협회(API) 인정 공장승인, 1996년 7월 노르웨이 선급협회(DNV) 인정 공장승인, 1998년 1월에는 기술연구소(TEREC)를 설립하였다. 2000년 5월 지금의 DSR제강(주)로 회사명을 변경 하였고, 2002년 2월 순천 제2공장 준공(순천공단내)으며, 2003년 1월 증권거래소 주식상장, 2003년 3월 중국 선급협회(CCS)인정 공장승인을 받았다.
현재 DSR(주)와 DSR제강(주)는 중국 등 해외시장의 저가 공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전진 수출기지로 중국 청도 공장을 이미 완공해 본격적인 해외 생산 체제도 구축해 놓고 있으며, 2015년 1조원 시대를 목표로 국내 및 해외공장의 양대 체제를 통해 수출 1억달러를 향해 전 사원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새로운 사업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7000만불 수출탑 수상한 DSR(주), DSR제강(주)
DSR(주), DSR제강(주)는 올해 매출목표 2000억 달성을 목전에 두고 최고의 제품과 기술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답게 제품의 약 70%를 전세계 10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지역 기업으로는 드물게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곳곳에 현지 영업 사무소를 두고 있다. 2001년에는 이미 ‘3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고, 2006년 ‘5000만불 수출탑’에 이어, 지난해 1년만에 ‘7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며 향토기업으로서 큰 쾌거를 이뤘다. 지난 1965년부터 40년 넘게 선박, 자동차등 각종 분야에 사용되는 로프를 생산, DSR(주)를 국내 로프산업의 선두 주자로 성장시켰다. 홍 장로는 “품질제일주의가 성장의 밑거름”이라며 “기존 거래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조선사들도 자사의 제품을 시험 사용해본 후 공급 계약을 맺자고 할 정도로 품질에서 자신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높은 품질은 홍 장로의 ‘고객중심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홍 장로는 “모든 기술의 중심에는 고객 즉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DSR(주), DSR제강(주)는 고객제일주의, 품질제일주의를 표방하는 경영이념으로, 사내에 기술연구소를 개발하여 와이어로프 및 여러제품들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직원교육이 뒷받침되어 현재의 결과가 나온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몇 년간 급속히 성장한 DSR(주)는 현재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2년 말 최첨단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녹산공단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악화된 경제 여건 속에서 ‘품질 제일주의가 성장의 밑거름’이라는 신념과 사원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홍 장로의 뚝심이 바로 이 회사의 핵심이다. 매달 현장에서 사원들을 독려하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진다는 홍 장로는 최고 경영자를 비롯한 전 임직원이 노사화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노조는 존재는 하지만 설립 이후 단 한번의 노사분규가 없을 정도로 기업의 노사 안정에도 힘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홍 장로는 “오늘날까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예수님 참사랑 가운데에 기독경제인으로 온전하게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제게 검소와 성실을 입혀주신 선대에 부끄럽지 않은 경영인으로 남겠다”며 경제인에 앞서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다짐을 전했다.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가난은 물질적 빈곤을 뜻하는 바는 아니다. 물질적 축복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따라 이웃을 긍휼의 사랑으로 섬기며 베풀기 위한 목적이라면 하나님이 얼마든지 은총을 내려주실 것이다. 기독교인은 잘 살아야 한다. 그의 삶의 철학에 따라 그 풍요를 삶의 실천적 전도 역할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교회 은퇴 이후에도 담임목사에게 이제부터는 일체 저와 상의할 것도 없이 당회원과 목사님들이 잘 협력해서 교회를 이끌어 가길 바란다며 당부를 드려 간접자 조언을 일체 배재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서 일선에서 물러난 평신도로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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