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서상환 화백(수정동성결교회 안수집사)

한국적 정서가 담긴 성상화 제작… 깊이 있는 작품 위해 신학 공부도
.
성상(聖像, ICON) 이미지를 다루는 부산 미술사의 중추적 작가, 서상환 화백의 7~80년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회고전이 지난 10월 9일(화)부터 23일(화)까지 미광화랑에서 열렸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서 화백, 그의 인생 그리고 작품 세계 이야기를 듣기 위해 회고전이 열리는 미광화랑에서 만남을 가졌다.

# ‘루오’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시작한 그림

서 화백에게 ‘어떻게 그림을 시작하게 됐느냐’고 묻자, ‘루오’ 이야기를 꺼냈다. 동성중학교 2학년, 까까머리 중학생이 미술 시간 프랑스 종교화가 ‘조르주 루오’의 작품을 보고 미술을 하겠노라 다짐했다는 것이다. “루오의 그림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루오 같이 그림을 그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했죠” 루오 그림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그의 미술 여정이 시작됐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오직 미술을 향한 열정으로 경남미술원을 찾아간 그는 1960년부터 5년간 그림을 배웠다. 특히 부산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김종식 화백(1919~1988)은 그에게 그림의 스승이자 인생의 스승으로 1975년까지 김 화백으로부터 서양화 수업을 받았다. 그는 한때 중등교원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해 녹산중, 송도 중·고교, 김해중학교 등에서 10여 년간 미술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루오’와 같이 그림을 그리겠다던 자신의 서원과는 점점 멀어지는 듯 했다.

# 끝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화가

서 화백은 안정적인 교사직을 뒤로 한 채 깊이 있는 작품을 위해 신학공부에 나섰다. 경성대 신학대학 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유학길에도 올라 1978년 ‘중세미술을 통한 그리스도상 연구’ 논문으로 미국 내셔널크리스천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1995년 미국 루이지애나침례대학교 대학원에서 ‘단색 목판화 작업을 통한 그리스도상 연구’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그린다’는 피카소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공부는 끝이 없다. 미술서적, 신학, 심리학, 철학 서적 등 1만 8천여 권의 책으로 가득한 그의 서재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 듯 하다. 그를 두고 ‘영원한 현역’이라 일컫는 것은 그의 나이 곧 70세가 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열정만은 청년 못지않기 때문으로 1980년 ‘ICON 화집’을 시작해 16권의 시집과 화집을 내기도 했다.

# 작품이야기… 자생적인 성상화 작업 노력

1970~80년부터 성상화(聖像畵) 제작을 본격화한 그는 1978년 ‘구도자’연작에서 화면의 중심으로부터 방사선으로 퍼져 나오는 빛 이미지를 표출해 신앙생활로부터 얻은 심신의 화평, 영적인 각성 등 성령 체험을 시각화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지만 한국에 들어왔다면 당연히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이어오고 있는 작업의 밑바탕”이라며 성상미술 작업을 통해 서구식 성상화를 한국식으로 변모시켰다. 기독교적인 모티브에 한국인의 심성에 내재된 미의식인 민화, 전통문양, 고미술 등을 접목해 그만의 독특한 성상예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 작품이야기… 영역 넘나드는 작품 세계

그의 주된 작품은 유화다. 하지만 금속과 박 공예, 테라코타, 목조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통해 서양화와 판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분방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저는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발라 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물감이 마르는 시간이 깁니다. 그 시간을 이용해 목판화를 시작하게 된거죠” 캔버스 위의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이용해 판화를 시작했다는 그는 1970년대부터 부산 판화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1980년에는 목판화 작업을 본격화했다. 그 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판화 기법까지 개발했다. 서양식 판화기법에서 벗어나 탁본을 뜨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전각법을 판화에 접목한 것. 1978년에는 도자기도 시작해 역시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는 부산미술협회가 주관한 제2회 송혜수미술상을 통해 인정받았다. 부산미술협회 송혜수미술상운영위원회는 “35회의 개인전과 240여 회의 단체전을 통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준 점, 다양한 작품세계로 미술적 표현을 확대하는 등 지역 미술 발전에 공헌한 점을 들어 서 화백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방언을 그대로 받아 쓴 비형상의 자동 기술적인 서체적 추상의 선화를 보이고 있다. 종이나 보드, 캔버스 위에 무의식을 바탕으로 아크릴과 먹으로 아무렇게나 쓴 듯하지만 묘한 느낌을 준다.

# 기독교 미술, 그 외로운 길

한국 미술계에서 기독교 미술의 길을 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외딴 곳을 향해 가는 외로운 길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미술계에서 기독교미술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고, 개신교의 경우 종교개혁에 의해 비판 받았던 성상에 대한 우상화 금기는 여러 오해와 시비를 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작품 생활을 이어온 그는 수많은 애환과 고뇌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라고 고백하는 그에게는 오직 미술을 향한 열정밖에 없는 듯 했다. 그는 “삶의 현장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를 표현하고자 노력한다”며 앞으로도 그것을 위해 열정을 바치겠다고 고백했다.

옥영식 미술평론가가 말하는 서상환 화백에 대한 글의 한 구절을 끝으로 그의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서상환의 생활과 작품의 원동력은 그의 말대로 ‘신을 향한 신앙으로 참 자유를 얻은 기쁨’에 있으며, 신앙과 생활과 예술이 삼위일체화 되는 것을 지향했다. 신을 향한 신앙은 그를 기독교에 귀의하게 했으며,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도록 했고, 기독교 미술에 대한 간절한 발원으로 자생적인 성상화(이콘[icon])의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게 하였다” 이경애 기자

2007.11.03
지난 기사를 보실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110년 전, 항구 서쪽에 복음으로 세워진 부산 항서교회



-암울했던 시대에 복음의 빛으로 세워진 교회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학사교회’라고 불리던 교회
-지역사회를 품고 다음 세대와 함께 할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Q 기존 ‘부활절연합예배’라는 이름에서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A 기독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

 

삼일교회 성도가 공개한 송태근 목사 청빙 일화 ‘주목’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 청빙을 받아 부임하던 시기, 강남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새삼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삼일교회)


삼일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3년 전 송태근 담임목사의 청빙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시기 강남교회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