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고, 부모 잃은 거리의 소년에서 세 개의 박사학위 소지한 한국의 남자 헬렌 켈러로
 |
| . |
한국전쟁으로 시력을 잃고, 부모도 잃어 갈 곳 없이 거지처럼 떠돌던 한 소년이 있었다. 눈 앞의 세상도, 자신의 현실도 어둡기만 했던 절망의 시간, 그 소년에게는 하나님이라는 한줄기 빛이 있었다. 평생을 그 빛을 의지해 살았던 그는 이제 세 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한국의 남자 헬렌 켈러로, 실로암안과병원을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희망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다. 그가 바로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김선태 목사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사나이
김선태 목사는 10살이 되던 해 한국전쟁으로 두 눈을 실명하고 부모마저도 잃은 절망의 고아가 되었다. 살기 위해 친척집을 찾아 갔으나 집안에 맹인이 있으면 재수가 없다고 구박만 받으며 학대와 욕설,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할 수 없이 그는 친척집을 나와 전국을 떠도는 거지 생활을 시작했다. 거지 생활도 절망의 연속이었다. 동상으로 두 다리를 잘라야 할 위기가 있었는가 하면 상한 음식을 잘못 먹어 식중독에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이는 삶이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처음 만난 예수님을 생각하며 주일이면 꼭 예배를 드리고, 구걸해 얻은 돈 중 새 돈을 골라 정성껏 헌금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첫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맹인들을 수용하는 ‘Light House(빛의 집)’이라는 맹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도 사감 선생의 학대와 차별대우 속에서 또다시 절망감을 맛봐야 했지만, 그는 박사가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에 의지하며 열심히 공부해 맹학교에서 월반 해 졸업하고, 사강 선생의 학대를 피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또다시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남이 그에게 찾아온다. 서울역 앞에서 무작정 찾아간 전도사님의 안내로 맹인 교육을 원하는 외국인 선교사를 만나게 됐다. 그를 통해 국립 서울 맹학교에서 6개월간 영어, 수학, 점자를 배웠다. 그 후 맹인을 위한 책도, 시설도 없던 그 시절 밤새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해 맹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반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에게 대학이라는 문은 높기만 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국가고시를 봐야했지만 당시에는 맹인이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대학 입학을 위해 생명을 걸고 서른세 번 문교를 찾아갔고, 결국 숭실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 장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 전공, 미국 매코믹대 목회학 박사 학위, 명예 철학 박사학위와 명예 신학 박사 학위까지 세 개의 박사 학위를 받은 남자 헬렌 켈러가 되었다. 그는 “희망은 절망으로부터 시작 된다”고 고백했다. 만일 부산 맹아원에 있을 때 차별과 학대를 받지 않았다면 맹아원을 나올 수도 없었고 정상인 학교에 갈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며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믿고 신앙으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긴 결과라고 전한다.
▲희망의 빛을 비추는 삶… 평생을 시각장애인 위해 헌신
장애와 환경의 절망을 넘어선 김선태 목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인 희망의 빛을 시각장애인을 위해 비추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부터 맹인 학교 설립, 점자 성경과 찬송가 보급을 시작했고 맹인 젊은이들 98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지도자를 양성해 맹인사회를 새롭게 변화시켰다. 그리고 지난 1986년에는 서울 등촌동에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해 시각장애인 2만 7천여 명의 개안수술을 했고, 실명 예방을 위해 35만명의 환자에게 무료로 안과 진료를 해줬다. 1995년부터는 기증받은 리무진 버스를 이용해 움직이는 실로암 병원을 운영하면서 병원이 없는 농·어촌, 나환자촌, 교도소, 감호소, 변두리 지역 저소득층 등을 위해 1년에 약 40주간을 순회하며 무료안과진료, 개안 수술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료사업은 중국 연변, 케냐,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해외로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저녁 10시에 취침, 새벽 3시면 기상해 기도와 공부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그의 하루 일과는 온통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 뿐이다. 이러한 김 목사의 묵묵한 헌신과 봉사로 이미 대통령 훈장을 비롯해 호암재단 호암상 봉사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국제적인 막사이사이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새로운 비전, ‘실로암 아이센터’
평생을 시각장애인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 주어진 막사이사이상. 그는 수상의 영광을 하나님과 지금까지 주변에서 묵묵히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러면서 받게 될 수상금 5만 달러(약 4500만원) 전액을 ‘실로암 아이센터’ 건립 비용으로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교회와 개인이 동참해 주어 실로암 아이센터가 건립되면 하나님과 한국 교회 그리고 사회에 바쳐서 빛의 소망을 주는 병원이 되게 할 것”이라는 김 목사의 말처럼 앞으로의 그의 비전은 ‘실로암 아이센터’에 있다. 실로암 아이센터는 총 120억원의 예산을 들여 총 2400평(지하 3~4층, 지상 9층) 규모로 건축되며, 한국과 아시아의 사랑의 눈 센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작게는 벽돌 1장인 1,000원을 비롯해서 벽돌 100장, 1,000장을 기증하는 벽돌 기증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가정도, 믿음의 아들, 딸들과 동역자, 후원자, 기도자까지 있으니 너무나 부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선태 목사.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온 그의 삶이 장애우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도전이 될 것이다.
이경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