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탐사선과 우주왕복선 Discovery호 발사 성공에 주역
2004년 미국이 화성탐사선 스피릿호를 화성에 안착해 3개월간 화성에 머물며 토양과 바위, 생명체와 물의 존재에 대해 탐사해 미국항공우주국으로 자료를 전송해 준 사실을 보고 사람들은 과학의 발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금번 미국은 우주왕복선 Discovery호의 발사에 성공해 또 한번 우주 개척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는 미국이 지난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공중폭발 사고 이후 미항공우주국(NASA)은 한동안 우주왕복선 발사를 중지한 바 있어, 이번 Discovery호의 발사의 성공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커다란 발전이었다.
그리고 앞서 화성탐사선에 사용된 기술은 이미 한국의 무궁화 위성등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우주항공업계의 커다란 발전 외에도 그 이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술을 연구, 개발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하나님의 사람 정재훈 박사(오렌지카운티 한인교회 장로)이다.
정 박사는 화성탐사선 스피릿호에 정착한 로봇팔 신경계통을 제작했으며, 우주왕복선 Discovery호에 균열방지용 특수 열가열 장치를 만들어 발사 성공에 기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재 전 세계 인공위성 중 정 박사의 기술이 없으면 95% 이상이 발사되지 못할 만큼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새벽 재단에서 얻은 축복
이러한 정 박사의 성공 이면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동행했다. 각 언론매체의 인터뷰와 보도등을 통해 이러한 업적이 소개 될 때마다 정 박사는 ‘전적으로 주님의 도우심 덕분이었다’고 고백했으나 그의 화려한 업적만 소개될 뿐 그의 신앙은 뒷전이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곳이다. 정 박사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이처럼 막중한 일을 해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임을 고백한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정장으로 차려입고 서재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는 그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응답에 이 새벽 시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며 잠을 청한다.
크리스천이 반드시 성공해야
34년전 1977년 한국의 안정된 자리를 뒤로 하고 장박사가 31세때 일가족이 미국에 이민가 처음 가진 직장이 현재 정 박사가 사장으로 있는 테이코 우주개발사였다. 정 박사는 이 회사에서 우주공학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고 가족 경영 중심인 회사에서 유일한 동양인 직원으로 10여년 동안 개발담당 부사장을 지낸 후 지난 2000년에는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정 박사가 근무하던 테이코우주개발사는 처음엔 아주 작은 부품회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회사를 통로로 사용하셔서 우주왕복선 균열방지용 특수 열가열 장치를 만들게 하셨고, 디스커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됨으로써 미국은 자존심을 회복했다. 정 박사는 미국 우주왕복선 사업을 도우라는 기도 응답을 받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시킨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얼마 전 정 박사에게 미항공우주국(NASA) 직원 650명 앞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정 박사는 이 때에 삼위일체를 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런 기회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성공시켜 주셨다고 밝힌 정 박사는 크리스천이 반드시 성공해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한 이민 가정
정 박사는 또한 미국사회에서 볼 때 이민 1세대로 미국 주류사회에서 인정받는 한인이며 그의 자녀들 역시 외교관과 뉴스 프로듀서로 성공한 이민 가정이다.
아내인 정정숙 권사는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마치고 오렌지카운티 가정상담소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자녀인 첫째 딸 줄리양은 23살에 최연소 외교관이 되었고 주중총영사관, 주일미국대사관, 주베트남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무성에서 북핵담당으로 일하기도 했다. 둘째 딸 코니양은 AM740 KCBS에서 뉴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정 박사는 성공적인 이민과 자녀 교육은 부모의 신앙에서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머니는 새벽마다 늘 머리에 손을 얹고 정 박사에게 국가와 민족, 세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했다. 정 박사는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나는 세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전했다.
아내 정정숙 권사도 자녀를 양육할 때 자녀들도 자신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고 길렀다고 전했다. 정 권사 또한 남편 못지않은 신앙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웰빙이 유행이지만 영혼이 기쁘게 봉사하면 피곤하지 않다”며 “교회 봉사를 통해 오히려 건강을 주신 것 같다.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슈퍼우먼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교회 개척시절부터 교회 일이라면 남다른 애정을 보인 두 사람은 이민 초기 생활의 터전을 잡느라 바쁜 나날들 가운데서도 전도사로 불릴 만큼 열심이었으며, 지금은 집을 제자훈련과 성경공부 장소로 항상 개방하고 있다.
세계적인 우주과학자로 명성을 높이고 있으면서도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정재훈 박사의 겸손한 모습과 모범적인 신앙의 가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는 귀한 가정이 이 땅에 더 많이 생겨나길 기도해 본다.
손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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