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

차이코프스키 콩쿨대회 입상하는등 대표적인 북한 음악가
피아노 연주 하고 있는 김철웅 교수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 그의 직함에는 이 말 외에도 ‘탈북‘이라는 말이 덧붙는다. 탈북피아니스트라는 이력을 가진 그는 피아노가 좋아, 피아노를 자유롭게 치기위해 목숨을 건 탈북을 결심했다.
그는 피아노를 위해 탈북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피아노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이제 그 목숨과도 같은 피아노를 하나님을 위해 연주하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주가 목적이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된 김철웅 교수. 촉망받는 북한 피아니스트에서 탈북까지 영화 같은 스토리와 그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북한의 촉망받는 음악가로...
북한에서 클래식 음악가가 되는 일은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만큼 힘든 일이다. 음악적 재능은 물론이고 출신성분까지 좋아야 한다.
당 간부의 아들로 8살 때, 북한 전역에서 단 두 명을 뽑는 예비 피아니스트 자격에 합격한 그는 이 후 초등학교부터 철저히 전문교육을 하는 영재교육기관인 평양 음악무용대학에서 14년간 피아노를 전공한 수재였다.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보통 6천여명이 응시하는데 이중 9명이 선발될 뿐이었다. 이런 교육을 거쳐 정부의 배려로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북한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 김철웅 교수다.
하지만 그는 이런 피아노 영재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 또한 그치지 않았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잔 기억이 없을 만큼 피아노에 열중했으며, 연습만으로도 하루 12시간을 족히 넘겼을 정도였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콩쿨대회에서 74년에 정명훈 씨가 2등으로 입상을 한 이후 20년간 아시아에서는 입상자가 나오지 않던 가운데 김철웅 교수가 95년 이 대회에 참가해 4등으로 입상할 만큼 실력을 갖춘 북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자유를 찾아 탈북을 결심
이렇듯 촉망받던 그가 탈북을 결심한 것은 러시아 유학시절이었다. 북한에서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 유학시절 체제 찬양과 완전 별개인 진정한 클래식을 접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음악가들은 음악에 죽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러시아 유학시절 카페에 갔다가 흘러나오는 리차드 클라이드만의 가을의 속삭임이란 곡을 듣고 세상에 피아노로 이런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그동안의 음악생활에 큰 혼란을 느껴 탈북을 결심했습니다“고 고백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목숨을 건 탈북을 결심하게 만들었고, 그는 2002년 9월 15일 탈북 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을 만나다
중국으로 탈북을 하게 된 그는 목재소에서 통나무를 지고, 머슴 일까지 하며 숨어지내는등 그동안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음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탈북을 하기전까지 그는 자신이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악과 피아노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으면서 그는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난 다음부터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더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매일 중국 공안과 북한의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매일 같이 힘겨운 노동을 하며 지내던 그는 북한에서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겨우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었던 극동방송의 찬양을 흥얼거리며 힘든 노동을 이겨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이었고, 교회라는 곳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저 찬송가 음이 좋아 그냥 따라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진정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탈북을 하기는 했지만 그가 진정한 음악을 하기 위해 탈북을 결심한 것과는 달리 그가 놓인 현실은 음악도 피아노도 전혀 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선교단체를 알게 되었고, 김 교수는 그곳에 피아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김 교수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지금 한국에 서 있기까지 그는 생사의 길목에 서는 일을 수없이 겪어야 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하나님을 영접하게 됐지만 자신이 자만하였을 때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이송 되는등 죽을 고비를 겪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아버지 후배 수사관을 만나 풀려나는등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똑똑히 보고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연주와 간증 통해 하나님 전해
음악을 통해 자유를 찾았지만 이제 그는 음악으로 자유를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현재까지 전국 132개의 교회를 다니며 피아노 연주와 함께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며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선율과 그의 간증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극동방송의 홍보대사로 지난 1월 위촉돼 더욱더 하나님을 전하기에 열심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이신 것을 믿고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하나님을 전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연주하겠다“고 고백했다.

현실에 부딪혀 힘들어하는 탈북자들에게...
많은 탈북자들이 남북한의 격차로 인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를 힘들어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김철웅 교수는 지난 2003년 4월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 음악대학원에 진학하는등 적극적으로 사회에 부딪혔기 때문에 오히려 적응이 빨랐다. 그리고 현재는 한세대 교수로 후진들을 양성하며 피아니스르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항상 그를 따라다녀 처음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자신부터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신이 탈북자인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소원하던 피아노와 하나님을 마음껏 만나며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 부딪혀 힘들어하는 탈북자들에게 김 교수는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것이 가장 빠른 적응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그의 소망...
이제 한국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통일이 되면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통일 한국의 음악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껏 체험한 하나님을 전하며, 자신의 연주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어쩌면 아주 특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탈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분단이라는 현 시점에서 나눠진 우리에게 복음이 담긴 음악을 전해줌으로써 그 벌어진 틈 사이를 매꿔 줄 특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세상에 보내실 때 각 사람마다 특별한 사명을 주셨다고 하셨다. 김철웅 교수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계획하고 계시고, 이루어 가실지... 곧 이루어주실 통일된 조국에서의 그의 활약이 궁금해진다. 손진화 기자

200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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