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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손권 교수(한마음교회 장로) |
"신은 죽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인 답을 얻는데 익숙한 공학도로서 하나님의 존재는 막연한 것이었습니다. 애당초 신앙은 교양 정도로 간주했었습니다."
이렇게 냉철하기만 했던 손권 교수(한마음교회 장로,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는 신앙을 가지기 전 종교생활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노력하면 할 수 있는데 신에게 의지 하려하는 나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손 교수가 예수를 믿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신앙인이 됐다. 그는 지금 "거듭난 사건은 어떠한 과학적인 이론이나 실험보다도 명확했고, 완전했다"고 고백한다. 바울처럼 전도인의 사명을 끝까지 잊지 않고 살겠다는 손 교수를 만나보자. <편집자 주>
⊙교회에 첫발을 들이다
유학시절 아내를 교회에 차로 데려다 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에 가게 된 손 교수는 처음엔 주차장에서 기다리느니 그냥 교회 안에 들어가 있는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예배당에 발을 들이게 됐다.
유학 중이었으므로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 다과를 즐기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 후 한국에 들어와 부산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앙생활도 부산에서 하게 됐고, 교사와 찬양대등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 나갔다.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다
96년 2월 믿음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영을 치료하는 윤 권사님으로부터 기도를 받던 손 교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 ‘네 마음이 닫혔구나, 네 몸 속에 더러운 피가 흐른다’는 메시지였다. 그때 ‘지금 죽으면 지옥행이구나’는 생각이 스쳤다. 과거를 돌아보니 죄가 용서 받지 못한체 그대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죄를 필름처럼 보여주시고, 회계하게 하셨다. 그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내 죄는 뉘우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미워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이제는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었다.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찾아왔다.
84년부터 교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지만, 그전까지는 자신의 생각에 속아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자신의 기쁨 정도였다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인이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고 손 교수는 고백했다.
⊙언제 어디서든 복음을 전하며
그 후 손 교수의 열정적인 전도행진이 계속됐다. 신나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강의실이든, 연구실이든, 공항이든, 학술대회에서든 손 교수의 전도행진은 이어진다.
강의를 하면서 강의 자료로 쓰이는 그림, 동영상, 통계자료등을 복음적인 것으로 사용해 자연스럽게 전한다든지,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전도하기등 끊임이 없다. 특히 학교에서는 7년전부터 학생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손 교수의 인도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해외 출장 중에도 손 교수는 떠나기 전 먼저 그 곳의 한인교회에서 간증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 정도다. 손 교수의 스케줄 표에는 간증집회 일정들이 줄을 잇는다.
⊙‘손 교수의 못말리는 전도행전’
작년 11월에는 ‘손 교수의 못말리는 전도행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또한 전도를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며 짧은 시간동안 그가 만난 하나님을 다 전하기가 아쉬워 정리해 두었던 글을 전하던 것이 책으로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됐다는 감사의 메일들이 손 교수에게 많이 전해지고 있다.
청년복음화와 부산, 경남의 복음화에 쓰임받고 싶다는 손 교수는 오늘도 교정에서, 차안에서, 그가 가는 어느 곳에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있다. 주님이 부르는 어느 곳이든지 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충성된 증인의 삶을 살고 싶다는 손 교수의 고백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손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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