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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우를 위한 사역자를 일으키고 싶다는 김달근 목사 |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감당하기 힘든 일은 아닙니다”
많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며,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말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김달근 목사는 필요한 만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시니 힘들지 않다고 고백한다.
▲현재 포항 한마음선교회에서는 어떤 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지요?
저희는 장애우 공동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우는 형제 8명과 자매 5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고, 간사님 가족과 저희 가족을 합쳐 모두 20명의 대식구입니다.
포항에 있는 한 아파트 두 채에서 형제 공동체와 자매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12살 아이부터 80대 할머니까지 한 식구를 이루고 있지요.
▲ 언제부터 장애인 공동체 사역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장신대학원을 졸업하고 강원도에 개척을 하면서 사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큰 딸아이가 태어났죠. 그런데 두 돌이 지나도록 아이가 걷지 못해 서울대학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습니다. 선천성 뇌성마비라는 판정을 받았고, 그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장애우 사역에 대한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장애우 사역은 91년 밀알을 시작으로 지금은 한마음 선교회를 2000년 3월에 시작해 4년 동안 꾸려오고 있습니다.
▲ 함께 지내는 장애우들은 보통 어떤 분들인지 그리고 공동체 생활은 어떻게 꾸려가시나요?
장애우들의 경우 간혹 힘들어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너무 연로하셔서 돌볼 수 없는 형편이라든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가 그렇지요. 그런 장애우들은 공동체가 꼭 필요한 이들입니다. 하지만 기존 장애우 시설은 들어가기가 까다롭고, 인원도 다 찬 상태여서 대기해야할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회복지시설에는 경제적인 여건을 비롯한 여러 상황들로 입소하기 힘든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지금 저희 공동체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공동체 생활은 간사님 내외분과 저희 내외가 형제와 자매 그룹을 각각 맡아 돌보고 있습니다. 늘 자리를 지키며 돌봐드려야 하는 분들이지요. 그리고 공동체 생활 가운데 신앙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해 자연스럽게 복음이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있고, 가까운 교회에 가서 주일과 수요 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또 계속적인 치료를 받아야하는 분들이기에 당장 필요한 의료적인 부분을 돕고 있고, 거동이 불편한 불은 물리치료사가 직접 방문해 치료를 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학생의 경우 특수학교의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희 공동체를 거쳐간 가족들은 30~40분이 됩니다.
▲ 앞으로 어떤 비젼을 가지고 계신지요?
장애우 사역에 뛰어드는 사역자를 일으키고 싶습니다. 장애우들은 일반인들보다도 휠씬 복음의 사각지역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학생들이 넘쳐나지만 장애우 사역을 하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애우를 위한 사역자들이 절실한 형편입니다. 앞으로 선교회를 통해 효율적인 장애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비사역자들에게 잠재된 동기를 일깨우는 지속적인 훈련을 하려고 합니다.
장애우들을 하나하나 돌보느라 늘 바쁘고 정신이 없지만, 김 목사는 시간을 쪼개어 야간에는 포항1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장애우에 대한 사랑을 더욱더 키워가고 있다. 이들에게 좀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사역과 훈련으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늦은 밤까지 김 목사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큰 딸과 13명의 장애우가 있지만, 그는 10여년전 또 한명의 딸을 입양했다. 뉴질랜드로 입양되려던 아이를 김 목사 부부가 맡은 것이다.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고, 뒤고 물러날 수 없는 일이었다’고 김 목사는 고백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도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딸을 입양하면서 실제적으로 경험했다’고 말한다.
김 목사의 주변에는 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김 목사는 그들을 가만히 끌어 안아주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듬어 주시는 것처럼 말이다.
손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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