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YMCA인물콘서트 (下)


지난 2월 서울YMCA에서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회와 함께 일제시 YMCA를 이끈 지도자 10인을 선정 ‘YMCA인물콘서트’출판기념식을 가졌다. YMCA연맹결성100주년을 맞는 올해 이를 기념하여 Y와 사회를 이끈 믿음의 지도자들을 지난 717호에 이어 요약 발췌하여 소개한다.


●풀뿌리민족운동의 개척자 고당 조만식(1882~1950)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의 교육자, 언론인, 시민운동가, 정치인이다. 22세에 기독교에 귀의했다. 1919년 3.1운동과 중국출국 실패 등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오산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을 역임했다. 일제강점기하에 교육활동과 국산물산장려운동과 일본제품불매운동을 주도 ‘조선의 간디’로 불렸으며, 국내민간자본으로 민립대학 기성회운동, 신간회 등을 주도하였다. 그가 총무로 10여 년간 재직한 평양YMCA는 지역사회현안은 물론 개인의 대소사까지 상담한 평양사람들의 민원창구이자 무관의 풀뿌리 지방정부였다. 해방 후 숱한 정치지도자들이 서울로 향할 때 평양을 지키며 민족의 장래를 설계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글로컬Glocal’을 실천한 셈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 평안도 지역의 지도적인 개신교 민족지도자였으며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반탁운동을 주관하다 1946년 평양고려호텔에 감금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중 김일성 측근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YMCA농촌운동의 산증인 신흥우(1883~1959)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평신도 중의 한 사람이다. 한학을 배우면서 개화사상에 눈뜨고 상경, 12세 때부터 배제학당에서 신학문을 익힌 뒤 1896년 서재필, 이승만 등과 협성회를 조직하고 정치토론을 벌이며 근대화운동을 전개했다. 1903년 미국에 유학 신학문을 섭렵 후 귀국 서울YMCA총무로 농촌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당시 우리사회의 주요과제 중에 하나인 농촌문제를 해결하려한 산증인이다. 북미Y의 지원으로 농민교육과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덴마크 농촌을 시찰 후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등 농촌운동을 선도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Y 농촌운동은 전 기독교계로 확산되었다. 그는 흥업구락부와 적극신앙단 등을 조직하여 기독교를 갱신하는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에게는 YMCA 일이 곧 교회를 위하는 일이며, 나라 일이며, 세계를 위한 일이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이‘한국YMCA 역사상 가장 위대한 Y맨’으로 만들었다.


●독창적 사상가 다석 유영모(1890-1981)

함석헌의 스승정도로 인식되던 다석 유영모는 최근에야 널리 알려졌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는 그를 한국을 넘어 세계철학의 대사상가로 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등 기행과 난해한 그의 사상은 기독교를 한국화하고 유, 불, 선으로 확장하여 이해한 독창적 기독교사상가로 전통신학에 익숙한 우리들을 불편케 하는 아웃사이더이다. 학자들은 서양보다 70년 앞선 그의 사상에 놀라워한다. 1940년대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기도 했으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을 열어 소수의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청중이 있으나 없으나 계속된 강의는 역사상 가장 긴 강의가 되었다. 1000쪽 가까운 ‘다석강의’는 1928년부터 63년까지 35년간 계속된 강의의 결과물이다. 김교신, 함석헌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려대 명예교수 김용준과 농촌운동가인 류달영도 제자들이다. 함석헌의‘씨알’이란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이도 그였다.


●함흥YMCA운동의 산증인 이순기(1890~1948)

청년이란 근대의 산물로 청년으로 불리는 세대가 등장한 것은 YMCA가 있고 난 뒤의 일이다. 그는 청년에게 새로운 미래를 보았고, 그 희망이 꺼지지 않도록 35년간 Y운동을 한 인물이다. 함흥 영신학교 교사로 근무 중 한일강제병합조약의 소식을 듣고 기도 중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개인신앙에서 공동체신앙에 눈 뜬 후 그 길을 걸었다. 그는 최초 지방-Y인 함흥YMCA의 이사로 창립에 참여하고 곧 총무가 되어 민족사회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으로 투옥되기도 했으며 신간회에 참여하여 민족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였다. 3.1운동 이후 한국사회는 사회주의가 수용되고, 이와 함께 무신론도 수용하였으나 그를 비롯한 Y지도자들은 복음의 사회화와 실용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농촌운동으로 민심을 붙잡았다. 사과판매조합과 소비조합을 조직하는 동시에 일본에까지 가서 판로를 개척 농가의 소득을 증가시킨 실천적 리더였다.


●학생YMCA운동의 거두 김원벽(1894~1928)

YMCA국제위원회는 한국Y를 창설할 목적으로 질레트를 파송하고 1901년 배재학당을 중심으로 YMCA를 조직하고, 1903년 정동 유니온클럽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를 창립하였다. 이어 상동청년학원, 황성기독교청년학관 등에도 학생Y를 조직하였는데 학생Y는 1910년대 일제의 무단 통치하에서도 꾸준한 명맥을 유지한 거의 유일한 전국적인 조직이었다. 이 운동은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도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발전해 나갔는데 그 중심에 김원벽이 있었다. 정부는 1973년 10월 3일 김원벽의 묘를 국립묘지 충혼비 뒤쪽 애국지사 묘 127호에 이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묘비문을 세웠다. “1919년 연희전문 제1회 졸업반 재학 시 3.1운동의 학생대표로서 행동대를 총지휘하니 33인과 그 외 15인을 합한 48인의 한분이시다. 왜정의 총칼을 무릅쓰고 독립선언식에 이어 서울역 광장 궐기대회의 군중을 지휘타가 피체, 3년의 옥고를 치르시고 심한 총상과 옥고로 인하여 1928년 4월 9일 영면하시다.”

2014.04.26
지난 기사를 보실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110년 전, 항구 서쪽에 복음으로 세워진 부산 항서교회



-암울했던 시대에 복음의 빛으로 세워진 교회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학사교회’라고 불리던 교회
-지역사회를 품고 다음 세대와 함께 할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Q 기존 ‘부활절연합예배’라는 이름에서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A 기독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

 

삼일교회 성도가 공개한 송태근 목사 청빙 일화 ‘주목’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 청빙을 받아 부임하던 시기, 강남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새삼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삼일교회)


삼일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3년 전 송태근 담임목사의 청빙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시기 강남교회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