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에 개최되는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4개월 여 앞두고 부산에서 WCC 찬반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24일(월) 부산 브니엘신학교에서 ‘WCC, 오해인가 진실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는 이병수 교수(고신대학교 선교학)의 사회로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수, 교회사)와 최덕성 교수(브니엘신학교 석좌교수, 교의학)가 각각 찬성 측과 반대 측 패널로 나섰다. 정병준 교수의 발제 ‘세계교회협의회를 향한 비난에 대한 한 응답’과 최덕성 교수의 ‘WCC 바로알라’라는 발제 발표 후 5가지의 주제별 열린 토론이 이어졌다. 특별히 ‘WCC의 이단성’에 대한 주제를 추가했다. 다음은 주제별 열린 토론의 내용이다.
이병수: ‘WCC가 동성애를 지지하는가?’, ‘용공주의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가?’, ‘성경관’, ‘선교관’, ‘종교다원주의’, 5가지 주제로 열린 토론을 시작하겠다.
1.‘WCC가 동성애를 지지하는가?’
정병준 : ‘약할 때 강함 되시네’를 지은 데니스 저니건은 원래 동성애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 동성애를 정리하고 그 유명한 가스펠곡이 나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우리가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 사람들을 정죄만 한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겠나. 나는 동성애자 목사 안수를 반대한다. 그리고 동성애는 하나님의 진리와 맞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해야하는데 동성애는 바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정죄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할 수 있도록 스페셜 미니스트리 영역을 만들어 줘야한다. 우리가 이것을 바르게 잡을 수만 있다면 이 문제는 WCC가 공식적으로 표명할 것이 없다고 본다.
최덕성 : WCC는 거룩성을 언급하지만, 성적인 문란, 동성애, 이혼, 낙태 등의 개인의 도덕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순결, 성결, 완전, 성화에 대한 강조를 찾아보기 어렵고 제5차 나이로비총회 이후 개인의 각기 다른 성 생활을 지지한다. 또한 동성애자 목사안수 허용법을 제정했다.
2. ‘용공주의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가?’
최덕성 : ‘WCC바로알자’라는 소책자에서는 WCC가 용공주의와 무관하다고 한다. 미국의 반공주의자 매킨타이어가남아공 인종차별백인정권을 이끌었다고 하는데 그는 WCC 용공주의 정책과 활동을 비판한 사람이다. WCC는 1960년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하는 정책을 펴는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선교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선교를 이해하고 활동한다. 또한 WCC 제네바 본부의 핵심 직원이었던 아르민 보엔스 박사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회사 교수인 게하르드 바지에르 박사는 각자의 저서에서 WCC의 용공주의 활동과 마르크스주의 혁명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역사를 기술했다. 냉전주의의 해석이 다르더라도 용공주의와 무관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병준 : 용공주의는 사회주의와 관계있다. 사회주의 스파이가 WCC의 임원으로 왔다는 말이 있는데 그럴 수 있다. WCC는 열려있는 공간이다. 고립된 사회주의는 얼마든지 교회기관을 이용하려고 든다. 모든 정부기관에 사회주의뿐 아니라 공산주의 등도 들어와 WCC를 자기들의 전략에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이 부분만 가지고 논하는데 이는 본질에서 벗어나며, 문제는 사회주의가 몰락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에큐메니칼이 굉장한 기여를 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문제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 자꾸 근거가 약한 것으로 문제를 만들지 말자.
3. ‘WCC의 이단성’
이병수 : 성경관에 대해 넘어 가기 전 사회자 임의로 질문을 하겠다. 최덕성 교수가 발제 발표에서 제안한 ‘WCC의 이단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병준 : 이단이라는 것은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WCC 안에 있는 교단은 주류 교단이다. 전 세계 기독교 인구가 23억이다. 천주교가 12억, 정교회가 2억 8천, 개신교가 4억, 성공회가 9천만, 독립교회가 3억 7천만이다. 여기서 5억 8천만이 WCC 멤버 교인으로 굉장히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있다. 다원주의자가 없지 않지만 극히 소수며, 주로 신학자들이다. 소수인 그 수를 놓고 수많은 교인들을 이단이라고 판단할 수 없고, 발상자체가 잘못됐다.
최덕성 : 김삼환 목사의 발언과 정병준 교수의 글을 읽어봤다. 종교다원주의나 종교혼합주의는 그 안의 일부 사람들의 주장이지 WCC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WCC 공식입장이라고 생각한다. WCC 학자들이 고대 교회의 공의회와 WCC 총회가 같은 맥락으로 현대판 공의회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성립될 수 없다.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정치적인 단체가 아닌 교리를 논의하고 진리를 향했지만, WCC 총회는 진리에 대해서는 등지고 비기독교적인 사상으로 점차 나아가려고 한다. 아마 고대 공의회에서 현재의 WCC 총회에 참석하게 된다면 단연코 이단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WCC에 대해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사실에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해야 한다고 보지만, WCC가 말하는 에큐메니칼은 점점 성경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그만큼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WCC의 종교다원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용공주의, 성경불신주의는 ‘다른 복음’이며 이중의미의 언어사용으로 그들이 말하는 신학 용어들은 역사적 기독교의 개념과 같지 않다.
4. ‘성경관’
최덕성 : WCC의 ‘성경의 권위에 서 있다’는 주장을 독자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 정통신학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이라고 하는데, 바르트주의는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다’라며 수단으로 여긴다. 천주교는 73권의 성전을 가지고 있다. WCC가 천주교와 함께 하면서 1963년 몬트리올에서 ‘전통론’을 고안했고, 천주교의 관점을 수용하면서 ‘오직 성경’ 원리가 사라지게 된다. WCC가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한다. 그러나 바아르선언서와 성경은 상관없는 부분이 많고, 상당부분 잘못 인용됐다.
정병준 : 최 교수님의 바르트주의 설명에서 빠진 것이 있다. 자기 의지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셔야만 한다는 뜻으로 바르트주의가 쓰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실천적으로 내 삶에 들어왔을 때 말씀을 적용하고 설교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고, 학자들의 말과 삶의 실천적인 영역은 어느 정도 구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에큐메니칼 신학자들의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해석의 차이가 있다. 전통론도 마찬가지로 용어의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분에서 생긴 해석차이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없는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 읽은 것이다. ‘오직 성경’ 문제도 젊은 학자들이 에큐메니칼의 영향을 받게 되고 가톨릭 안에서의 성경 이해에 대해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생명에 관해서는 복음전도의 생명과 생태계 차원의 생명을 구분해야 한다. 구원으로 인한 생명뿐만 아니라 세상의 창조물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것으로 그것들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론적인 구원의 영역과 세상적인 생명을 같이 놓고 보는 것이 아니다.
5. ‘선교관’
정병준 : 1960년대 WCC가 과격하게 활동했다. 1974년도 로젠대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1975년 나이로비부터는 복음주의가 상당 부분 회복됐다. 이전에는 교회가 선교의 주체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라는 ‘하나님의 선교’를 한다. 모든 교회가 모든 세계에게 온전한 복음을 전한다는 것으로, 온전하다는 의미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라는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로젠대회 설교자였던 존 스토트 목사는 영혼구원과 사회참여는 다르지만 사회참여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WCC가 복음주의권이 사회참여를 할 수 있게, 복음주의권의 비판이 WCC가 사회참여로 쏠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 충돌이 아니라 수렴 쪽으로 가야한다.
최덕성 : 개혁주의는 로잔언약 이전에 사회문화적인 영역에 대한 책임을 굉장히 강조해왔다. 기독교가 사회 환경이나 문화영역에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WCC가 전체를 아우르는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본다. WCC가 NGO나 유엔 등에서 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전력투구하고 엄청난 돈을 투자했지만 복음을 전하고, 그것에 대해 연구와 서구교회가 재생할 수 있는 일에 과연 얼마를 투자했는가. 그런 의미에서 전혀 통전적이라고 볼 수 없다. WCC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복음적인 교회가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그것에만 전념하는 신학적 구도는 마르크스주의, 해방주의 사고의 틀로 복음을 이해하고 매진하고 있어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로 기독교 진리를 상대화하고 있다. 교회를 쇠약하게 만들고 지형변화를 가지고 오는 WCC 선교는 문제가 많고 틀을 다시 짜야 한다.
6. ‘종교다원주의’
정병준 :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 사건에 대해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WCC 지도부가 성령에 대한 신학적 실험을 하려고 했던 것을 정현경 교수가 판을 엎은 것이다. 나는 해프닝이었다고 단호히 말한다. WCC는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틀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로 다원주의 논쟁이 되고 있는 ‘바아르 문서:다원성에 대한 신학적 관점’는 내 마음에도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든 종교다원주의가 맞다. 그러나 웨슬리 아리아자라는 신학자를 중심으로 만든 이 문서를 켄버라 총회에서 제출했지만 WCC총회에서 공식입장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다원주의자들의 활동이 일부 있지만 WCC는 열려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교파교회처럼 이단정죄나 신학적 정죄를 하기 어렵고, WCC가 다원주의 입장을 공식으로 택하는 순간 대부분의 회원교회는 탈퇴하고 지도부를 바꾸어야 한다.
최덕성 : WCC 회원교회 가운데 복음주의 교회와 활동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WCC 신학을 복음주의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고,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다. 이번 부산총회를 통해 그들이 한국교회에서 배울 것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기독교의 존립자체가 좌우되는 종교다원주의가 문제다. 부산총회에서 받아들일 공식 문서에는 대표적인 구호인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선언 등의 종교다원주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신칭의 교리, 십자가사역, 구속사역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것을 바꾸지 않는 한 기독교 문서라고 볼 수 없다. WCC의 일부 참가자들이 종교다원주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WCC가 1982년 문서 45조 내용, 1989년 산안토니오 대회가 채택한 문서, 바아르 선언문, 1997년 문서, 2000년도 문서 등 공식문서에서 다원주의의 내용을 담고 있다.
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