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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뒷산의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던 장기려 박사 |
- 장기려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 다양한 행사 잇달아 열려
- 손자 장여구 교수에게 전해 듣는 할아버지 이야기
- ‘바보 의사’의 뜻을 이어받은 손자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며 상한 이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없이 그들을 고치셨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런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고치심을 실천한 의사로 많은 이들이 장기려 박사를 이야기한다.
장기려 박사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1940년 나고야제국대학교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평양의과대학과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1950년 12월 차남 장가용만 데리고 월남했으며, 1951년 부산 영도영선동에서 천막을 치고 무료진료소 복음병원을 설립해 의술을 펼쳤다.
장기려 박사는 의학공부를 하던 시절, 성공이 보장된 길을 스승이 제안했을 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치료비가 없어 의사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무능력한 의사의 길을 걸은 것이다.
부산으로 피난 온 장기려 박사는 1951년 천막에서 무료병원을 열었고, 제대로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오진하지 않기를 항상 기도하며 수술을 했다.
환자를 향한 마음은 행동으로 옮겨져, 장기려 박사는 다양한 일들을 펼쳤다. 1968년 한국 최초의 민간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했고, 1975년 청십자의료원을 설립해 직접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장미회(간질환자 치료모임)를 창설, 부산 생명의 전화를 설립, 장애자재활협회 부산지부 창립에도 앞장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9월 28일 부산에서는 장기려 박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식이 열린다. 오후 3시 부산시청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과학기술계, 복지계, 교계, 의료계(의사협, 간호협)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장기려 박사의 정신을 나누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손자가 기억하는 할아버지, 장기려
장여구 교수는 인제대 서울백병원 외과의사이며, 장기려 박사의 손자이다. 장여구 교수는 “할아버님께서는 항상 근검절약을 강조하셨고, 가족 예배 중에 언제나 주님의 품안에서 잘 자라서 후에 주님의 세계에서 널리 쓰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날 위해 기도하셨다”며 장기려 박사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그리고 “항상 공부하는 의사가 되라고 강조하셨고, 의학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볼 때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항상 겸손하라고 말씀하셔서, 지금도 그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한다”며 할아버지 장기려 박사와 아버지 장가용 교수(서울의대?2008년 사망)의 뒤를 잇고 있음을 말했다.
또한 장기려 박사의 신앙에 대해 장여구 교수는 “모든 생활을 기독교적인 삶 그 자체로 여긴 분”이라고 설명했다.
장기려 박사의 뜻을 이어받아
고신대복음병원은 설립자 장기려 박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14일 ‘전문가와 함께하는 콩팥병건강강좌’와 장기려기념사진전시회를 개최했다. 또한 6월 20일에는 고신의대 성산관에서 장기려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초청 뮤지컬 ‘그 사람 장기려’를 무료로 공연했고, 6월 24일에는 강서구 종합복지관에서 무료진료활동을 펴기도 했다. 고신대복음병원은 이처럼 장기려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의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성산 장기려 박사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뒷산의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라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며 평생 가난한 사람 곁에서 의술을 펼치며 살았다. 1943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부분절제수술’에 성공한 명의였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집 한 칸 마련하지 않고 병원 옥탑방에서 살았던 청빈한 봉사자이자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성산장기려선생기념사업회는 그런 장기려 박사의 헌신적인 삶과 봉사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기 위해 1997년에 설립됐다. 이에 백낙환 이사장, 손봉호 부이사장을 비롯한 많은 의료인들이 장기려 박사의 뜻을 이어받아 국내·외 소외받고 가난한 이웃을 찾아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노숙자와 쪽방 거주자를 중심으로, 국외에서는 제3세계권에서 선교사들과 협력 사역을 펼치는 중에 있다. 성산장기려선생기념사업회는 2008년 아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장여구 교수는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2008부터 해외의료선교를 펴왔다. 2008년부터 매년 여름 성산장기려선생기념사업회와 백병원, 중계충성교회가 연합하여 해외 의료 선교를 폈는데, 2010년 12월 캄보디아 헤브론 병원(선교병원 원장 김우정 선교사)부터 2010년 장기려 메디칼 캠프를 열어 국내 의료봉사 팀으로는 최초로 약 4일간 갑상선 환자 등 13명을 전신 마취하에 수술하고 돌아왔다. 또한 올해 11월 13일에도 제2차 메디칼 캠프를 열 예정임을 밝혔으며, 장여구 교수는 “앞으로 할아버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장기려 박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언론에서 성자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항상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복음병원이 운영에 있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도 장기려 박사는 환자의 편에 섰다. 때문에 경영에 있어서 탁월함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한 장기려 박사는 개신교(장로교) 부산 산정현교회 장로였지만, 무교회주의를 표방하는 이들과 교제하며 부산모임을 갖고, 국제 교회개혁 모임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려 박사를 부를 때 많은 이들이 ‘바보 의사’라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바보’의 부정적인 뜻을 넘어설 만큼 장기려 박사의 삶이 얼마나 순수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성산 장기려 박사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다양한 면에서 연구돼야 할 것이며,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살았던 그의 모습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최찬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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