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호주-한국선교 120주년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 호주장로교의 한국선교를 돌아보다
■강병도 총장, 탁지일 교수 강사로 나서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이상규 교수)는 9월 5일 오후 5시 남부산교회에서 제19회 정기발표회를 개최했다. 오는 10월 2일 호주장로교회의 한국선교 120주년 기념일로서 이를 기념하는 모임으로 가졌다. 이날 강연은 1부 강병도 장로(창신대학 총장), 2부 탁지일 교수(부산 장신대학교)가 강사로 나서 각각 발제했다. 이날 발제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한·호 교회 관계 회고
강병도 장로(창신대학 총장)

120년 전 당시 시대상황과 선교사들의 사역내용, 순직호주선교사묘원성역화사업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당시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해 선교구역을 정하고 부산 경남지역은 호주 선교부가 주관하여 복음을 전했으며, 교육을 통한 계몽과 인재양성, 병원을 세워 의료를 통한 구령사역, 고아원 사역 등을 통해 실제적인 삶에 영향을 끼치는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부산을 선교기점으로 인접한 경남지역 진주, 마산, 거창, 통영에 선교지부를 설치하고 전도, 교육, 의료등 3분야에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다.
부산경남에 78명의 선교사가 찾았고 안타깝게도 그 중 8명이 풍토병으로 소천했다. 특히 데이비스 선교사는 40일이 걸려 부산에 도착했지만, 도착한 다음날 소천했다. 서울에서는 양화진선교사묘원을 통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교사를 기리는데 우리는 그 이름 하나 마련된 곳이 없어 안타깝다. 양화진은 놀토가 되면 5천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선교사들을 소개하며 그분들의 뜻을 기린다.
그래서 부산경남지역에 우리를 위해 순교하신 선교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마산에 순교자묘원을 마련했다. 이제 조성될 순교자묘원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주기철 목사님 생가와 손양원 목사님 생가가 마련돼 있어 성지순례를 할 수 있는 벨트가 조성될 것 같다. 이 사업에 호주교회 역시 반기며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부산교계는 물론 한국교회가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호주 빅토리아장로교회와 캐나다장로교회의 초기 한국선교 비교연구
탁지일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19세기 말 한국을 찾아온 호주 빅토리아장로교회와 캐나다장로교회의 선교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두 교회 모두 역사적 신학적으로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전통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둘째, 두 교회 모두 영국연방 식민지에 세워진 이민교회다. 셋째, 두 교회 모두 각각 자국의 전국적 차원의 교회연합과정에서 분열을 경험했다. 1925년 캐나다연합교회의 설립과 1977년 호주연합교회의 설립 당시 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장로교인들이 현재도 독자적인 장로교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넷째, 한국선교에 있어서 두 교회 모두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선교했다. 호주교회는 한반도 동남부의 끝 부산경남지역에서, 캐나다교회는 동북부의 끝 함경도와 만주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다섯째, 두 교회 모두 헌신적인 독립선교사의 사역과 죽음을 통해 공식적인 한국선교를 시작했다. 바로 호주교회의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1856-1890, 한국체류 1889.10.2-1890.4.5)와 캐나다교회의 윌리암 맥켄지(William John McKenzie, 1861-1895, 한국체류 1893.12.12-1895.6.22)가 그들이다. 데이비스와 맥켄지에게도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두 사람 모두 당시 해외선교사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인 30대 초반에 한국을 찾았고, 그의 사역을 일기로 자세히 남겼으며, 무엇보다도 두 사람 모두 34살을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길 때까지 한국선교에 헌신했다. 마지막으로 이들 두 선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호주와 캐나다 장로교회는 각각 5인의 첫 공식선교사들을 한국에 파송한다.
호주와 캐나다교회의 선교정책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호주교회의 경우, 빅토리아장로교회가 설립된 이듬해인 1860년 총회에서 해외선교위원회가 조직된다. 1860-1889년 동안 빅토리아장로교회의 선교사역은 주로 호주원주민, 중국이민자, 뉴헤브리데스(호주 북동부 남태평상의 군도로 현재의 바누아투공화국)로 국한되어 있었다. 이상규 교수는, “당시 저들의 선교의 동기는 고전적 의미에서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 당시 문서를 보면 해외선교(Foreign Mission)란 말보다는 이교도선교(Heathen Mission)란 말이 주로 사용된 점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분석한다.
호주 빅토리아장로교회와 캐나다장로교회의 초기 한국선교는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 교회 모두 헌신적인 선교사의 죽음을 통해 공식적인 한국선교를 시작했다. 각각 호주와 캐나다에서 헌신적인 국내선교를 펼쳤던 헨리 데이비스와 윌리암 맥켄지는 30대 초반의 늦은 나이로 한국을 찾아왔고, 두 사람 모두 34세를 일기로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두 교회의 공식선교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들의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한국복음화의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이다.
데이비스와 맥켄지의 죽음 이후, 두 교회 각각 5명의 첫 공식선교사들을 파송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국 선교부들과는 달리, 이들 호주와 캐나다의 선교사들은 당시 조선의 중심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호주교회는 불교의 땅 부산경남지역에서 사역했고, 캐나다교회는 일제강점기하 민족고난의 현장인 함경도뿐만 아니라 만주, 연해주,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이민자들을 위해 사역했다. 그리고 이는 복음의 씨앗이 이들 지역에 뿌려지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죽음을 앞둔 호주선교사 헨리 데이비스와 이를 마음 아프게 지켜봐야 했던 캐나다선교사 제임스 게일의 기도와 증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고백으로 남아있다.

저는 늦도록 데이비스선교사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말할 힘도 없을 정도로 무척 지쳐 보였습니다. 데이비스선교사와 저는, 우리가 건강하든지 아프든지 간에, 살든지 죽든지 간에,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구세주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오늘 오전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있는 외국인묘역에 데이비스선교사는 묻혔습니다.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데이비스선교사는 여기에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오늘 우리가 무심히 딛고 살아가는 이 땅 어딘가를 걸었을 데이비스와 맥켄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들의 예수정신은 오늘도 우리 곁에 남아 부산경남지역 복음화의 거룩한 부담을 우리들에게 지워주고 있다.
오혜진 기자

200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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