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총회 연합예배에서 장로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기대한다


9월 24일 합동, 통합, 기장, 합신 4개 교단, 연합예배로 한 몸 선언
1950년대 장로교회는 3차례 분열 후 고신, 합동, 통합, 기장 등 4교단으로 분리

지난 9월 10일 예장합동, 통합, 합신, 기장 4개 교단 총무들이 모임을 갖고 9월 24일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주총회 연합예배의 주요 식순과 설교자를 확정했다. 이 모임에서 장로교 4개 교단 연합감사예배 설교자로 예장합동 최병남 부총회장, 사회자는 예장통합 부총회장 김삼환 목사로 확정했다. 이는 제주선교 100주년을 맞아 장로교단이 제주총회 연합예배를 추진해 온 그 노고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사실 최초 한국인 목회자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에 복음을 전한 100주년인 2008년을 맞아 올 초부터 여러 장로교단이 제주총회를 준비해오면서 지난 60여 년 간 분열과 충돌의 이미지만을 보여 왔던 장로교회에 화합과 평화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신교단이 제주총회를 추진해오다 선회한 것과 교단마다 다른 예배형식과 절차를 감안해 성만찬식을 나누지 않기로 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선교 100주년을 맞은 제주지역 교회와 분열된 한국 장로교의 연합과 일치에 희망적 메시지를 남긴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편집자 주)

한국 장로교회의 출발
한국에서의 장로교회는 미국북장로교(1884년), 호주장로교(1889년), 미국남장로교(1891년),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1898년)에 의해 소개됐다. 그리고 1907년에는 ‘독노회’를, 1912년에는 ‘조선 야소교 장로회 총회’를 조직해 하나의 장로교회로 출발했다. 비록 소수의 분파는 없지 않았으나, 1912년 조직된 장로교 총회는 1942년 제31회 총회를 끝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기까지 단일 총회로 남아 있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교회재건운동’이 일어나고 남한만이라도 총회를 재건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청으로 1946년 6월 12일 남부총회가 조직되어 기존의 총회조직을 재건했다. 1947년 4월 대구제일교회에서 회집된 제2회 남부총회는 1942년 제31회 총회를 끝으로 해산되었던 장로교 총회를 계승하기로 결의하고 1946년의 제1회 남부총회를 제32회로, 1947년 제2회 남부총회를 제33회 총회로 계승했는데, 이 총회는 1952년 8월말까지 단일총회로 남아 있었다. 일제하에서의 장로교 총회의 해산은 타의에 의한 강압의 결과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한국 장로교회는 1912년 총회의 조직 이후 1952년 8월까지 40년간 단일 총회로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50년대 한국의 장로교회는 3차례의 분열을 통해 고신, 합동, 통합, 기장 등 4교단으로 분리 조직되었고, 이 분열이 오늘의 한국장로교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 이후 1970년대를 거치면서 수다한 분열을 거듭, 현재 한국장로교회는 100여 개가 넘는 교단으로 분리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은 상처 입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서 서 있다.

한국장로교회의 분리
한국장로교회는 거주선교사의 내한 이후 첫 10여 년 간은 성장이 미미했으나, 1895년 이후 뚜렷한 성장을 보였고, 1910년 이래로 꾸준한 성장을 보여 왔다. 1960년대, 특히 1970년 대 이후 수출주도형의 경제성장을 최선의 과제로 삼았던 당시 국가정책의 영향 하에서 장로교회를 포함한 한국교회는 ‘성장’을 제일 가치로 수용, 교회의 외적 성장을 추구했다. 특히 기복주의적 경향은 교회성장의 주요한 동인이 되어 외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시기 교회 분열 또한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 교회는 성장하면서 분열했고, 분열하면서 성장하는 흥미로운 현상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경우 ‘분열’과 ‘성장’은 상호 전제와 상호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고신교단의 분립은 해방 후 최초의 장로교 분열로써 신사참배 문제와 관련한 쇄신론에 그 시원이 있으나 교회쇄신론자들이 교권주의자에 의해 총회로부터 단절된 결과였으며, 전 국토가 전화 가운데 있던 1952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불행한 일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로부터 부당하게 축출된 인사들, 곧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경남법통노회는 일 년 동안 총회와 관계 정상화를 도모했으나, 1952년 4월 대구에서 회집된 제37회 장로교 총회에서는 경남법통노회 총대를 끝내 받아주지 않고, “고려신학교와 그 관계 단체와 총회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경남법통노회 인사들은 1952년 9월 11일 진주 성남교회당에서 총노회를 조직하며 고신교단의 출발을 선포했다. 한국장로교회의 두 번째 분열은 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장로회의 분립이었다. 기독교장로회의 분립은 김재준 목사 등 조선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인사들의 신학적 진보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1930년대부터 대두되었지만 장로교 총회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1940년 설립된 조선신학교는 신학적 자유를 표방하는 신학교육 기관이었고, 이 학교를 둘러싼 총회의 대립, 그리고 김재준 목사의 제명은 기독교장로회의 분립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1953년 6월 10일 한국신학대학 강당에서 전북, 군산, 김제, 충남, 경서, 경북, 목포, 충북, 제주노회 등 9개 노회대표 47명이 모여 소위 법통 제38회 총회를 열고 별도의 총회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기독교장로회의 출발이었다.
1950년대를 마감하는 1959년 한국장로교회는 또 한 차례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게 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장로교회 내의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견해차와 박형룡 교수의 3천만 환 사건, 경기노회 총대건 문제였지만 따지고 보면 박형룡과 한경직으로 대표되는 두 집단 간의 대립에서 연원된 견해차였다. 분쟁의 소재는 WCC문제였으나 박형룡에 대한 인책문제 등 복잡한 문제로 연결되면서 1959년 대전총회에서는 두 집단으로 분리, 대립하게 되었고, 이들이 각기 서울의 승동교회와 연동교회에서 별도의 총회를 개최함으로서 결국 승동측(후일 합동교단)과 연동측(통합교단)으로 분리하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고신을 제외한 각각의 교단(회)은 독자성 혹은 정통성을 주장해 왔다는 점이다. 고신교단을 제외한 장로교단은 분열될 당시의 총회를 계승하고 있고, 총회의 회수를 산정할 때 1912년 장로교 총회 조직 때로부터 통산하고 있다. 이것은 자파가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주체임을 드러내려는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교권주의가 교회 분열의 주된 요인
장로교회의 교세는 한국교회의 약 70%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장로교회의 분열은 한국교회의 분열을 의미했고 한국교회 전체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장로교회의 분열은 1930년대부터 제기된 신학적 자유주의, 일제하의 신사참배 강요와 해방 후 이에 대한 회개와 권징의 문제, 교권적 대립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분열될 수밖에 없는 소지를 안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요인은 우리 안에 내제한 내적 요인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파벌의식, 당파성, 지연, 특히 학연 등 비신학적 요인이 더욱 영향을 끼쳤다. 1950년대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에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명분이 없지 않았으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연합을 파괴해야 할 불가피한 분열이었던가에 대해서는 반성의 여지가 없지 않다.
※위 내용은 이상규 교수(고신대)의 ‘1950년대 한국장로교회 분열과 연합에 대한 검토’ 논문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정창식 기자

200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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