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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8월 8일(수) 오전 10시 30분
·장소 : 삼남연회 본부 3층 회의실
·진행 : 방영식 목사 (언론분과위원장, 한사랑교회 담임)
·출연 : 장석재 목사(삼남연회 총무) 정양희 목사(영남선교대회 삼남연회 준비위원장, 온누리교회) 이동현 목사 (부산동지방 감리사, 성문교회 담임) 정동준 목사 (부산동지방 선교부 총무, 동래온천교회 담임) 한석문 목사 (해운대교회 담임)
·글/사진 : 신상준 부장
·‘영남선교대회’ 전도와 부흥 일으킬 것
·이준 열사, 유관순 열사, 김구 선생 등 감리교인
·감리교 세계적으로 132개국 약 7,000만명 교세
사회자 : 오는 8월 23일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전국의 감리교회가 모여서 영남선교대회를 개최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전국에서 10만 명이 집회에 참여할 예정인데, 부산에서 개최하는 이번 대회의 동기와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장석재 총무 : 3년전에는 광주에서 호남선교대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서울 중부권에 비하여 호남과 영남권에 감리교회가 열세지역이기 때문에 감리교 열세지역에서 전도와 부흥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부산은 전국적으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기 때문에 부산복음화에도 기여하고자 합니다.
사회자 : 이번 영남선교대회는 ‘2007 희망 페스티발!’ 이라는 부제를 걸고 행사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며, 행사의 중요한 내용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정양희 준비위원장 : 먼저 올해 부산에서 부산의 복음화를 위하여 중요 집회들이 많이 개최되는데 이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닐까 생각하고 이번 감리교 영남선교대회도 부산의 복음화운동에 크게 기여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행사에는 22일 광안리해변에서 열리는 청년 전야축제가 있고, 감리교회가 처음 시작된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순례와 희망 달리기운동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본 행사에는 무엇보다 부산과 영남의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중보기도와 초청전도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부산시에 1억원의 사회복지기금을 전달하고, 소외된 지역의 마을 정비사업, 복지기관 지원사업, 사랑의 장기기증사업, 다문화가정 돌보기 등을 하고 있으며, 본 행사에는 가수 인순이 등 유명 연예인의 축하공연과 함께 전도축제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회자 : 아시아드 경기장에 10만 명이 모이는 금번 감리교 영남선교대회는 부산교계적으로도 큰 도전과 관심 속에 있습니다. 이번 영남선교대회를 계기로 부산에서도 감리교회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한국감리교회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시지요.
이동현 감리사 : 한국감리교회는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부부가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함께 1885년 부활주일에 인천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디딤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더욱 뜻 깊은 것은 초대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님이 배를 타고 목포로 가다가, 바다에 빠진 한국 여성을 구하려다 안타깝게도 목포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감리교회 초대 선교사 아펜젤러는 이 땅에서 순교를 하였습니다. 선교초기부터 감리교회는 장로교회와 선교신학이 달랐다고 봅니다.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는 일차적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에 비하여, 감리교 아펜젤러 선교사는 우선 우리 민족을 돕고 계몽하는 지역사회봉사를 목표로 하여 학교와 병원, 고아원 등을 세우는 사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선교정책으로 인하여 한국감리교회는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고 봅니다.
사회자 : 감리교 신학에서 중요한 점들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석문 목사 : 장로교를 대표하는 존 칼빈이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한 ‘예정론’을 주장하는 것에 비하여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디전2:4)”고 하는 말씀이 기초하여 ‘만인구원론’ 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모든 사람을 전도와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리교회는 개인의 내적 구원뿐 아니라 사회구원까지 포함한 전인적 구원을 주장하기 때문에 감리교회는 선교초기부터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왔습니다. 사실 일제치하에서 외국 선교사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주장하던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을 그대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민족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친일파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감리교회는 신앙부흥운동과 민족운동을 함께 병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장로교인은 6명인데 비해 감리교인은 10명이나 됩니다. 3.1 운동에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유관순 열사도 천안 매봉감리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 뿐 아니라 제암리교회 등 많은 감리교회와 성도들이 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불에 타죽거나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사회자 : 민족운동의 많은 지도자를 감리교회가 배출하였는데 어떤 인물들이 있습니까?
정동준 목사 : 지난 7월 14일, 감리교회에서는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준 열사가 순국한 네덜란드 헤이그를 감독회장님과 감리교회 지도자들이 방문하여 그곳에 기념교회를 봉헌하고 기념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준 열사는 고종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밀사로서 당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일사늑약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고 민족의 자주, 독립을 요구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영국의 방해와 세계열강의 냉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왜, 대한제국을 제외하는가?“라는 항의문을 발표하고 조국의 현실을 알리며 분전하다가 1907년 7월 14일 헤이그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헤이그 시에서는 이준 열사가 순국한 7월 14일을 ‘이준 평화의 날’로 제정하였고, 그날 기념식에는 민족을 사랑하다가 이역만리 외국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의 고귀한 삶을 기리는 뜻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기념축사를 보내왔습니다. 이준 열사 뿐만아니라 유관순은 집안이 모두 천안 매봉감리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감리교회가 세운 이화학당에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독립운동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가 천안의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유관순은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하다가 끝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순교하였습니다. 또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상해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 선생일 것입니다. 김구 선생은 초기에는 동학운동에 참여하였지만 동학운동이 실패하자, 기독교에 입문하게 되었고 청년시절에는 진남포 감리교회에 다녔죠. 서울에 올라와 상동감리교회를 중심으로 민족운동을 펼쳤던 분입니다. 이처럼 한국감리교회는 기라성 같은 민족 운동가들을 배출한 자랑스런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개신교회 중 해마다 ‘순교자기념주일’ 지키는 것은 감리교회 밖에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자: 현재 감리교회의 교세는 어떤 가요?
정양희 목사 : 세계적으로는 약 7000만명의 감리교인이 있으며, 국가로는 132개국이나 됩니다. 미국의 경우, 감리교인이 850만명 인데 비하여 장로교인은 250만명 정도 됩니다. 국내의 감리교인 수는 약 153만명에 달하고, 교회 수는 6000여개에 달합니다. 한국 감리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주로 중부 이북 쪽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감리교회들은 거의 대전지방 이북에 많이 있고 10만명 성도가 모이는 초대형 감리교회도 한국에 여러개 있습니다. 현재 인구 370만되는 부산에 감리교회가 겨우 60여개 밖에 안되는데 비하여 인천 지역에 있는 강화의 경우는 인구 8만 명에 불과한 군단위에 감리교회가 130 여개나 되고 강화 전체 교회의 95% 가 감리교회라는 점을 비교해보면, 부산과 영남의 감리교회가 얼마나 열세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회자: 한국 개신교에서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을 기념하여 올해를 영적 각성운동 100주년의 해로 기념하고 있는데, 감리교회는 어떤 입장입니까?
이동현 감리사 : 물론 1907년 평양에서 길선주 목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회개와 영적각성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평양의 부흥운동은 갑자기 하루 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그보다 4년 전 1903년 원산에서, 감리교 선교사 하디 목사가 일으킨 회개와 영적 각성운동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디의 영적각성운동의 불길이 개성과 함흥, 인천, 공주, 목포에 이어 서울과 평양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1907년 평양부흥운동이 있기 까지 중요한 산파 역을 한 사람은 감리교 하디였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하디를 빼고 평양부흥운동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리교 하디를 가리켜 ‘한국부흥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회자: 한국감리교회는 좀 더 열린 에큐메니칼교단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여기에 대하여 말씀해주십시오.
한석문 목사 : 감리교회는 매우 복음적이면서도 열린 교단으로서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작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감리교대회에도 우리는 루터교단과 천주교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많은 교단들이 사소한 교리나 정치적인 이유로 분열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한국감리교회는 분열이 없이 서로 화합하는 가운데 단일 교단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큰 자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사회자: 끝으로 감리교 영남선교대회와 관련하여 부탁하실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양희 목사 : 한국감리교회는 ‘신실한 감리교인,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표어로 삼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감리교회는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날 민족운동과 계몽운동에 앞장서왔고, 나아가 교육, 복지, 의료선교를 통하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서 어두운 이 세상에 많은 희망을 주었는데 앞으로 부산에서도 감리교회의 훌륭한 사역들이 좋은 열매를 맺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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