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참배는 역사 인식의 문제, 전쟁 책임과 죄책 인정하지 않음에서 비롯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인해 국제정세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이때에 광복절을 맞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 기독학자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일본교회의 무거운 짐 야스쿠니문제
와다나베노부오 (渡邊信夫)
동경고백교회 목사.
일본쿄토대학교 문학박사.
전 기독교신학교 교수.
전 야스꾸니 신사 참배문제 대책위원
야스쿠니 신사를 반대하는 중요한 요인 2가지
나는 제2차 세계대전 말쯤 약 1년 8개월 동안 참전하였다. 처음부터 기독교신자였던 나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도록 강요당할까 심히 고민하였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나는, 평화를 지키는 일과. 야스쿠니를 반대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였다. 약 60년대 후반부터 야스쿠니 반대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운동에 참가하는 자들의 인수는 적었고, 거의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물론, 문제의 핵심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본 공산당 계통의 사람들도 이 문제를 잘 이해하였지만, 그들은 동서냉전이나 노동운동에 관한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기독교의 반 야스쿠니 운동은 신앙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으로 나누어 고려될 수 있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운동하는 자들은, 신앙 면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활동을 기피하는 경향을 가진다. 정치적 문제에 중심을 두는 자들은, 신앙문제로서 야스쿠니 반대운동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자익사상과 동일하다. 이 입장은 금일에 와서 거의 소멸해 버렸다.
신앙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정치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독일 고백교회의 길을 모방하였다. 일본기독교회는 일찍이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반대운동을 배워야 했었는데 극소수가 이 일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였다.
야스쿠니 반대운동의 역사
60년대 말 야스쿠니 신사 국영화의 움직임이 일어난 때 이 일에 반대하여 일어난 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는데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숫자였다. 신도(神道)의 부흥을 기독교가 반대하는 종교전쟁으로 비유하는 자들도 있었다. 일본기독교 신자들을 격려한 자들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신사의 위험성을 경험했기 때문이었고 야스쿠니 문제성을 일본인 이상으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에 있어서 반 야스쿠니 동향을 일본도 무시 할 수 없게 된 것도, 역시 한국의 신사참배반대운동 정신에 있다고 하겠다.
전후처리의 어중간 함
일본 천황과 그 전쟁 책임을 국민 스스로가 묻지 않았다는 것이 지적될 때가 많다. 일본은 정신이 궁핍한 나라다. 따라서 일본의 기독교 역시 정신적으로 궁핍하고, 더욱이 그 가난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극이 있다. 더욱이 우리 스스로의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전승국가의 전후처리가 정의로웠는가도 물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전후 처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안았다. 연합국 중에는 이 처리에 의문을 가지는 나라도 있었지만, 도의에서 어긋난 극동재판은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전후보상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이루어 질 수가 없었다.
전후 보상으로써, 구식민지출신의 전쟁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책임과 죄책을 인정하는 보상이라는 사상은 일본정부에도 일본국민에게도 존재하지 하지 않았다. 이것은 독일 또는 독일인과 현저하게 다르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이다. 사실, 독일은 전쟁책임에 관하여 심오하게 논의하고, 책임지는 노력을 다하고, 나라의 신뢰를 회복했다. 일본이 배워야 할 사항이다.
야스쿠니 문제의 근간
야스쿠니 그 자체는 국가가 전쟁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고자 세워진 것이다. 전쟁 희생자는 국가의 잘못에 대한 희생자이기 때문에,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 그 보상을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막대한 액수가 될 것이다. 국가는 그 대신에, 싼값에 발행할 수 있는 “영예”를 주었다. 그리고 희생자의 육친에 그 영예에 만족할 수 있도록, 교육적 선전을 하고, 또는 금전적 우대를 주었다. 많은 유족은 이러한 것으로 만족하지만, 그러나 죽은 자에 대한 원한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전사가 영예라고 설득한다. 사실, 근대국가라는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 또는 전체국가에서, 국가를 위해서 죽은 자들은 영예라고 하는 신화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고 있지만, 그 신화가 무너질 때가 올 것이다. 국가에 대한 관념이 변화될 때, 즉 국가관이 변화되는 다원화 사회가 이미 왔다.
야스쿠니의 부활
야스쿠니는 이전에 육군과 해군이 자금을 내어 유지 관리하는 국가 신도의 시설이었다. 전후, 점령군은 신도와 국가를 분리시켰다. 신사는 그것을 믿는 자들의 자금에 의해서 유지되게 되었다.
이 제도의 변화에 의해서 야스쿠니 신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많은 신사는 그 자체의 역사와 문화만으로 존속의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는 명치정부가 천황제를 지탱하기 위하여 만든 시설이었다. 야스쿠니 신사의 부속시설로는 전쟁정신을 고무하기 위한 전쟁박물관뿐이다. 사실, 이 신사에는 이 종교를 믿고, 이 종교단체를 유지하고, 종교성을 발달시키고 성장시키고자 하는 믿음 깊은 자들의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종교 희생자의 유족이 이 종교의 신앙인으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이 계속되는 한 그 힘을 펼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면 그 존재의미가 없어진다. 더욱이, 그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라고 나라가 인정했고 천황이 인정했다. 따라서 전쟁의 희생자의 죽음은 그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을 야스쿠니 신사가 두려워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적어도 2차 세계 대전까지의 일본에서 일어난 전쟁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면서, 장래에 일어날 전쟁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국영화
야스쿠니 신사 국영화라는 정책이 74년도 일본 자민당에 의해서 대두되었다. 적어도 외면적인 동기는 신사 유지비를 국가가 부담하여 유족들의 부담을 덜어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족회는 자민당의 유력한 지지 세력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의원 내각 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진전되지 못했다. 자민당내부에서 이것은 정교분리라는 헌법에 위헌된다는 신중론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영화라는 사상은 여전히 자민당내부에 존속하고 있다. 민영화에 대한 자민당 내부의 생각은 헌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헌법 9조(전쟁포기, 비무장은)와 20조(정교분리)를 개헌하려고 하는 생각이다.
공식참배를 위한 발버둥
또 하나의 정책은 ‘야스쿠니 신사 공식참배’라는 표현이다. 수상이 참배하면, 이 신사는 사적인 기관이 아니라 공적기관으로 된다는 이해이다. 나카소네수상, 고이즈미 수상, 동경도지사등이 이런 생각으로 물들어 있다.
공식참배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신사참배가 ‘소화순난자’로서 극동군사법정에서 재판받은 자들을 합사한 것이다. 그들은 아시아 침략자들로서 재판받은 자들이다. 이들이 신으로서 제사받게 되는 것은, 침략받은 국가들의 국민들에게는 침략을 긍정하는 신호이다. 동경재판소는 ‘평화에 대한 죄’를 재판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은, 결국 두 번이나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전범의 합사를 분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온 것이다.
예컨대, 일본인은 전쟁의 희생에 대하여 확실하고 명확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때 그때 임시응변으로 대응해 왔을 뿐이다. 이제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되어 파정될 것이다.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각하고 복잡하게 한 것은 소화 천황의 전범합사 반대라는 사료이다. 소화천황의 죄를 면책하기 위하여, A급 전범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죄를 지었다고 하여, 극동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소화 천황의 책임을 논하기 전에, 평화에 대한 죄를 단죄하지 않으면 평화는 도래하지 않는다는 논법이 있다. 이것을 일본은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전범합사는 이 논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소화천황이 참배하지 않은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기독교 역시 혼돈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또한 활동을 할 수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운동을 계속적으로 계승하여 나아갈 인재가 나타나지 않고, 교회 전체가 무기력에 빠져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각성하여, 말씀이 밝히는 우리 자신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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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무엇이 문제인가?
도카카쯔야(登家勝也)
요코하마장로교회 목사
야스쿠니신사반대투쟁위원
주기철목사기념회 대표
인도와 우리의 8.15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자들이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45년 전쟁(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계획자들, 또는 추진자들이었던 A급 전쟁범죄인이 합사되어 있기 때문에 참배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을 분사하던지, 아니면 다른 추도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와 항의는 전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 항의에는 일본시민의 권리에 대한 배려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별도의 추도시설이 만들어져서 그곳에 수상이 신사참배를 한다면 용서될 수 있는 일인가? 신사참배란, 일본에서는 전사, 특히 전몰자에 대하여 예배를 하는 종교행위이다. 따라서, 정부기관인 수상이 예배행위을 한다면, 그것은 일본인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에 의한 우상숭배 또는 종교행위가 일본인의 양심에 상처를 주고, 더 나아가 많은 일본인들에게 우상숭배를 장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우상 숭배자들이 일본의 모든 분야에서 정통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야스쿠니 문제는 역사인식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야스쿠니신사는 과거의 모든 일본의 침략 전쟁을 범죄적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합당하고 선한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 전쟁 (예를 들면, 1867의 戊辰전쟁, 1877년의 西南전쟁, 1883년의 秩父사건)등에서 패전한 자들을 영구히 반역자로 간주한다. 즉, 정부에 반역한 자들, 또는 반대하는 자들은 역적으로 몰리고, 무시되고,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침략전쟁이란, 야만적인 국가를 일본이 선진화 시켜주는 행위이며, 따라서 선진국인 일본에 합병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침략적 범죄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선한 일에 항거한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을 오히려 악인으로 규정한다. 대내외의 전쟁에서 죽은자나 산자나, 천황의 나라와 정부에 반대한다면, 모두 죽이고 차별하지만, 협조하고 복종하는 자들은 우대한다. 이러한 천황국가 중심 사상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고, 선전(宣傳)하는 신사가 바로 야스쿠니신사이다.
야스쿠니신사는 국가신사이다. 현재 일본에는 제도로서의 국가 신사는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자신들이 국가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다시 한 번 국가기관이 되려고 그들은 운동하고 있다. 이것이 1960년 이후의 야스쿠니 문제이다. 그 당시 교회만이 이 문제에 반대 운동을 펼쳤다. 사실, 야스쿠니 신사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약 8만이상의 신사가 야스쿠니 신사의 국가 기관화와 신사의 국교화 운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신사관청이라는 중심 기관을 통하여 정치적 조직으로서의 신도정치연맹을 설립하여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예를들면 고이즈미 수상과 같은 정치인들은 이 집단의 지지를 얻고 있다.
19세기 근대국가로서 출발한 이래로, 일본은 신도를 국교로 하여, 불교와 기독교를 압박할 뿐만아니라, 신도 교리를 중요한 교리로 수용하도록 했다. 이것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것이 신사참배강요였다. 이것은 1912년의 삼교회동(三敎會同)에서 맺어진 주요 종교단체와 국가와의 계약이었다. 1941년에 성립된 통합적 교회로서의 일본기독교단은 국가신도교리를 우선 교리로 수용하고,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그 다음의 교리로 간주한 교회이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신격화된 천황을 먼저 예배한 것이다. 각 개신교 교회는 일본국가의 국가 종교에 흡수 통합되어, 자신의 참된 모습을 상실하고, 일본국교의 목적(일본천황을 신으로 예배, 신도국가의 실리, 해외식민지 강탈 및 확대를 위한 전쟁 유지)을 실리화 하기 위하여 성경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이용하는 단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1945년 일본의 패전후, 참된 그리스도 교회를 바라는 자들은 이 통합적 일본기독교단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일본기독교단은 일본국교에 통합된 사실을 주되신 하나님 앞에 반역의 죄로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고 있다. 1967년의 이른바 ‘전쟁죄책고백‘의 내용안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 일본국의 속셈은 무엇인가? 정부는 현재까지 야스쿠니 신사를 위해서, 전몰자와 유가족의 명찰을 만들어, 합사의 결정에 관여하여, 전몰자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반영구적으로 법률화하여 지속하고, 일본 유가족회라는 종교적 우익단체를 만듦으로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외곽 단체들의 창구를 단일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것은 명확하게 헌법위헌이다.
즉, 명치시대 이후 일본국교인 신사신도에 모든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의 통합, 종속화의 방침을 유지하고 속행하고 있다. 수상이 매년 정월에 이세진구참배를 강행하고, 국공립교의 일요실시 묵인, 공무원시험고사의 일요일 실시 묵인, 국공립학교의 신사참배 강요, 공영방송(NHK)의 의도적 신사 선전과 함께, 이것에 항의하는 자들을 방영하지 않는 공영방송의 편향적 모습에 대한 묵인등을 통해서 알수있다. 그리스도교 학교의 성경수업은 정부의 방송윤리편성에 의해서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번역=김 응 수 목사
日本人,日本語敎會, 召命敎會.
homepage ;www. pusan-j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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