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으로 한국 교회 성장, 부흥할 수 있는 발판 마련 한국 교회 친일인사 회개로 새로운 길 모색해야
광복이 한국 교회에 어떤 의미?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탄압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은 광복의 날이다. 온 국민들이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였고, 옥중살이를 했던 민족 운동가들과 신사참배를 거절하였던 많은 성도들이 자유를 얻게 되어 출옥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한국교회 역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광복이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광복과 함께 개개인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한국교회는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힘찬 성장과 부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광복으로 인하여 기독교에 좋은 영향력만 끼친 것도 아니다. 일본의 강압으로 각종 교파가 단일 교단으로 통합되었는데 광복과 동시에 과거의 교파로 분리되면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진통을 겪은 것이다. 그렇다면 광복이후부터 현재까지 시대별 상황이 어떠하였으며, 그 속에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모습들은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한국 동란(1950-1952)- 혼돈기
38선으로 인한 남북분단은 약소민족의 비운을 체험케 하는 사건이었으며 하나의 민족을 이념적으로 분단시키는 방향으로 역사는 흘러간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아침에 북한은 무력으로 남한을 침공함으로써 비극적인 민족상잔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전쟁으로 많은 교회가 파손되고 교인들이 흩어졌지만, 전쟁중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였다. 이에 한국교회는 잿더미 속에서 하나님께 민족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였고, 교회장소가 비록 천막이었지만 새벽마다 성도들의 기도소리는 뜨겁기만 하였다. 이 새벽기도가 있었기에 한국교회가 살아 있고, 성도들의 눈물은 이 민족 앞에 다시 큰 부흥의 길을 열어 놓게 되었다.
교회의 재건(1950-1985)- 제2도약기
이 시기에는 전후 월남한 교인들에 의해 교회가 곳곳에 세워지면서 서울과 남한 일대는 교회적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수많은 교회가 전국 도처에 건립되면서 과거 서북지방에서 부흥의 횃불을 올렸던 기세로 부흥의 불길이 번져간 것이다. 당시 월남한 목회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고, 선교사 또한 그러한 일들을 했다. 통계자료에 보면 1945년 교인의 수가 382,800명이었고 정확히 10년후인 1955년에는 교인수가 1,324,258명이라고 하였다. 10년 사이에 무려 3배에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고 말할 수가 있다. 물론 숫자적인 증가지만 성도수의 증가는 교회의 부흥을 결정짓는 중요한 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간과할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교인수의 증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로는 한국을 공산군의 세력에서 지켜준 미국이 기독교 국가였고, 한국 초대대통령과 장관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도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전쟁의 파괴는 새로운 질서를 창건하는 요인이 되었고, 이런 것은 정신적인 면에도 작용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동란이 끝나면서 외국의 각 교파들이 선교사를 파송하여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처럼 교회가 새로이 재도약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은 한국 교인들의 뜨거운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교회의 분열(1950-1985)- 제2도약기
이 때에 한국교회는 또 다른 진통을 겪게 되었다. 바로 교회의 분열이다. 한국교회가 분열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신사참배 문제이다. 신사참배의 휴유증은 광복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1951년 장로교단에는 제1차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1954년에는 또 다시 총회가 분열되었고, 1959년에는 ‘에큐메니칼파’와 ‘보수파’의 분열이 다시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교회의 분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즉 교회의 분열이 교회의 성장에 기여한 점도 많다고 보는 경우이다. 분열된 2개의 교회 혹은 교단은 서로를 의식하면서 경쟁적으로 전도를 하였기 때문에 부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일어난 교회의 분열과 분쟁은 불신자들에게 교회에 대한 회의와 실망, 그리고 환멸을 가중시켰고, 결과적으로 불신자들을 교회로 인도하는데 최대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말았다.
60년대 이후의 부흥(1950-1985)- 제2도약기
한국교회의 부흥이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이다. 이때부터 한국의 경제가 부흥되기 시작하고 대형교회가 세워지면서 세계의 관심을 끌게 됐다.
침체기와 그 진단(1992- 현재)- 침체기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추기 시작하였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기도의 열기는 갈수록 식어져 가고 있고, 전도의 열기 또한 그러했다. 교인들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기보다 세상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시작했고, 생활의 여유와 함께 신앙의 열기 대신에 세상적인 오락과 여가를 즐기는 쪽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교회의 침체 원인에 대해 이상규 박사(고신대학교)는 “경제 성장과 함께 종교적 갈망이 쇠퇴해진 결과이며, 기성 교회의 영적, 도덕적 윤리적 권위가 상실되어 세상과의 구별이 없어진 것이며, 이단들의 활동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미래의 한국교회 어떻게 해야?
한국교회에 대하여 김대인 목사(성산교회)는 “한국교회 부흥의 비결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뜨거운 사명감과 열정, 새벽기도의 힘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명감은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라고 주장하였다. 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속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성도들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적인 가치관, 이기주의적이며 개인의 편리를 추구하는 현 교회 실태에 대해서 우리는 미래의 한국교회에 대비하여 빨리 자각해야 할 것이다. 또 김 목사는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개인의 영혼 구원이라는 의식 때문에 전도를 통하여 유입되기만을 바라고 있었고, 사회를 위한 역할을 해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만하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그런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기독교의 재도약의 기회는 주어질 것이다. 또 현재 한국교회에 일고 있는 선교의 열기는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선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더불어 민족상잔의 비극이 존재하였던 과거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모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깊으신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릴줄 아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한국교회를 맞는 성도의 자세요, 성숙한 교회의 모습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양미강 목사(한백교회 담임목사·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운영위원장)는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역사와 민족 앞에 마른 뼈들에게서 생기가 솟아나는 희망의 한 해를 만들어가야 하며, 민족 앞에 지탄 받는 종교가 아니라 민족 앞에 희망을 주는 종교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광복당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생활한 모습들을 회상하고, 현재 한국교회의 아픈 현실과 문제점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며, 해방의 기쁨을 맛본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미래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올바르게 이끌어갈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한국교회의 잘못된 신사참배, 일제의 친일했던 인사 후예들의 사과와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과 동시에 복음을 위하여 일제시대와 광복시대에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김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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