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무관심한 한국교회

교회안에 고정관념·편견때문에 장애인들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실정
< 편집자주>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교회내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사회와 별반 차이가 없다. 말로는 교회가 장애인들을 배려하고 기도한다지만 전반적인 통계를 보았을때 비장애인과 장애인과의 차별은 큰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본보는 왜 장애인들이 교회 출석하기를 꺼려하는지, 장애인에 대한 교회내 일반성도들의 의식등을 알아보았다. 이 내용은 사랑의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장애인연구소와 황성철 교수(한국교회연구소 소장, 총신대신학대학원)의 ‘장애인 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책과 역할‘이라는 논문을 참조했음을 밝혀 둔다.

한국교회가 장애교회
장애인 문제에 있어서 일반사회와 달라야 하는 한국교회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교회 내에도 여전히 장애인들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들과 그릇된 인식, 그리고 차별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구별이 지양되어야 할 교회 내에서 조차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존재하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경이적인 양적 성장을 이루어 온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의 긍정적 영향과 업적도 남기게 되었지만 교회의 질적 성장과 내실화를 기하지 못한 채 성장해 온 탓으로 많은 부정적 측면들이 노출되고 있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으로 장애인과 장애인 문제는 교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그 본래의 대내외적 사명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몇몇 의식있는 교회들을 제외하고 개교회의 성장과 교회의 발전에만 급급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교회의 현 주소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면서 까지 자기과시를 위한 해외선교에는 경쟁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정작 우리 가까이에 있는 소외당하고 고통받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선교에는 무관심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장애인들을 교회로부터 제외시키고 소외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장애교회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이 가난한 자, 병든자, 억눌린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한 천국 복음의 전파와, 치유와 사랑의 돌봄의 사역이었다면, 당연히 오늘의 교회도 길 잃고 소외되고,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그들의 절실한 필요들을 채워주고 또한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고 치료하고 화해시키는 섬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만일 교회가 이러한 일을 거절 한다면 교회는 교회 본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한 부분을 스스로 상실했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제는 교회가 장애인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교회가 이러한 일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대신 감당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이러한 점들을 깊이 인식 하여서 교회의 본연의 사명으로서의 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오늘의 장애인 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과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교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장애인 문제에 대한 교회 현실을 살펴 보면 한마디로 부정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며, 정말로 장애인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하며 헌신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와 교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교회들은 장애인과 장애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그릇된 인식과 고정관념 또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또 관심을 갖더라도 형식적이거나 소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것을 증명하는 것 중에 첫째 일반 교회 안에 장애인 성도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에 장애인이 10%이면 교회 내에도 장애인이 10%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둘째로 장애인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특수한 교회를 제외하고는 일반 교회에서 장애인을 찾기가 어렵다. 일반 교회들이 장애인에 대해서 전혀 전도의 대책이나 수용 대책이 없는 것이다. 셋째 교회 예배당이나 건축물에 장애인 시설이 되어 있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장애인 교회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애인 교회들의 어려운 현실등 여러 가지 사실들을 통해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 내에서의 냉대
장애인에 대한 개념이나 실태 그리고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교인이나 목회자가 별로 없으며, 교회 안에서도 고정관념이나 편견 때문에 오히려 장애인들이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일반성도들의 의식은 장애인들은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들이고 단순히 관심과 동정의 대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간혹 장애인들이 교회에 출석하더라도 그들에게 무관심하거나 교회 활동에서 제외시키거나 소외시키다. 그리고 장애인 성도를 큰 부담으로 여기는 경우까지 있으며, 그러한 무관심과 냉대와 소외로 인해 결국은 장애인이 그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일부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장애인들을 대할 때 그들을 귀신들린 것처럼 취급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장애인은 지금도 수 많은 설교 속에서 믿기만 하면 소경이 보고, 귀먹어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며, 앉은뱅이가 걷는다는 식으로 사람들의 신앙심을 부추기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이용되고 있지 않는다는 슬픈 일들이 생긴다.
교인들의 신앙의 깊이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요컨대 사랑의 실천이라는 이름으로 동정과 자선의 대상으로서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은 교회로부터 그 어떤 희망이나 구원의 메시지는 커녕 교회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조차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이 없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장애인들이 함께 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곳이 거의 없다는 점을 보아도 교회의 무언의 배척과 차별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근래 신축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을 갖추는 경우가 흔하지만 몇 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비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회건축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축하는 교회에서 마저 장애인 시설을 갖추지 않는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예산상의 이유, 재정적인 이유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결국 돈의 논리에 굴복하여 이웃을 돌봐야하는 사랑의 요청을 저버린다. 이런 행위는 극단적으로 말해 하나님 보다는 맘몬(돈)을 섬기는 행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장애인 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 몇 명 안되는 장애인 때문에 그 많은 돈을 들여서 그러한 시설을 설치해야만 하는가?‘라고 반문하지만 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들의 돈의 논리를 폭로시키는 것이다. 기독교의 계산법은 하나를 찾기 위해 아흔 아홉을 놓아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마저 돈의 논리를 사랑의 논리보다 앞세운다면 그것은 지극히 반성을 해야할 부분이다.
어느 누구도 장애인들이 하나님나라와 복음에서의 참여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누구도 영적인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범죄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견해(박성은 단장 참빛 장애인 선교단)
교회가 장애인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땅위에 많은 교회들은 장애인 선교에 대해 관심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2003년을 기준으로 해서 전국에 4만이 넘는 교회가 있다면 장애인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교회는 장애인 교회를 포함해서 1%~1.5%정도이고 장애인 교회를 제외한 일반교회의 장애인 선교 참여 비율은 0.05%~0.07% 정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 중 25%가 넘는 사람이 기독교 신자인 반면에 400만이 넘는 장애인 중 약 5%~7% 즉 5만 명에서 7만명 정도가 기독교인이다. 그것도 10년 전에는 1%정도만이 기독교인이었는데 그동안 여러 장애인 선교단체들이 장애인 전도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음에도 이 정도 수치밖에 늘지 않는 것은 장애인 선교단체만이 전도에 힘쓸 것이 아니라 교회들이 장애인 전도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장애인선교에 대한 무관심은 장애인선교 협력이나 장애인을 위한 협력 선교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장애인선교를 위해 주로 구제차원에서 소액의 후원을 해주는 교회가 대부분이고 적극적으로 돕는 교회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와 선교기관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장애인선교단체들은 자체운영을 해 나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존속해 나가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와 장애인선교 기관 간에 협력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중복되는 프로그램을 하나로 묶을 수 있으며 도우미 손길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어 작은 가사일이나 작은 심부름 등, 장애인들에게 봉사활동으로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고, 아울러 재정을 많이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말씀에서 알듯이 예수님이 살아오신 과정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인을 구하시기 위해 오셨지만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장애인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푸셨고 관심을 가져 주셨다. 예수님의 위로와 구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소외된 장애인이나, 병든 자, 고아나 과부였으며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만나는 장애인들마다 따뜻한 사랑을 베푸셨고 고쳐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장애인복지와 선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교회야말로 많은 장애인들이 와서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아 새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의 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장애인이 단 한명도 출석하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고, 제 발로 교회에 출석하기 위해 찾아오는 힘든 발걸음을 매몰차게 쫓아내는 아픔을 주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선교야 말로 기독교적 구원의 특성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고, 특히 장애인들을 무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선명하게 그것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초대교회 선교사들이 장애인과 가난한 자들을 특별히 돌보아 왔던 그 위대한 유산을 점점 탕진해 버리고 전혀 보충하려고 하지 않음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다. 전국에 200여개 미만의 선교단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나 대부분 영세하고 그나마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의 손길로 동참해 주시는 후원의 손길에 의해 한달한달 살림을 힘겹게 꾸려나가고 있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전문지식과 감독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한 의지에서 출발을 했으나 너무나 영세하고 가난해서 여러 가지 물질에 대한 유혹을 받고 있는 것 엄연한 사실이며 불건전한 방법으로 존속을 도모하는 단체들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장애인선교에 힘을 쏟음과 동시에 장애인 선교기관들과 연합활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할 때이다.

200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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