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신문 난립 어떻게 볼 것인가?

예장통합의 경우 교단 관련 신문만 7가지 제 살 깎아 먹기식의 경쟁은 그만둬야...
요즘은 정보화 물결을 뛰어넘어 정보화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단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인 것뿐만 아니라 교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정기간행물 가운데 기독교 관련 신문들의 목록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80여개가 넘는 교계신문들이 주간 혹은 격주간으로 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는 교단에서 발행하는 교단지를 비롯한 교계와 관련된 각종 신문들이 포함된다. 물론 언론의 역할은 어느 곳에서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며, 꼭 필요한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정보화의 홍수 시대에 이런 미디어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의 경우 직영하는 교단지를 비롯해 통합 교단과 관련된 신문만 7가지이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왜 ‘난립’이라고까지 표현되는지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편집자주>


통합교단의 신문 현황
교계신문들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보다도 ‘문서 선교’이다. 그것이 교단에 속해 있고 있지 않고를 떠나 모든 교계신문들이 창간되고 발행되는 것은 다 ‘문서선교’라는 이름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장통합 교단의 경우 교단지인 △기독공보를 두고 있다. 기독공보는 지난 8일 ‘지령 2500호 기념 감사예배’를 드리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1946년 1월 17일 ‘기독교공보‘라는 이름으로 창간한 한국기독공보는 26일자로 지령 2500호를 발행했으며, 지령 2500호는 국내 주간신문 사상 최초다. 이후 제호를 바꾼 기독공보는 1954년 예장 총회의 결의에 따라 교단지로 발행돼 왔다.
기독공보는 지령 2500호를 32면 특대호에 10만 부를 발행, 본격적인 구독자 배가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인터넷신문도 종합일간지 수준으로 구축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지난 감사예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교단지 이외에 통합측 신문사에는 6개의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한국장로신문은 통합측 17,000여 장로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으면 전국장로회연합회의 기관지로 출발했다.
△평신도신문은 ‘선교 교육 봉사 연합의 구원’이라는 사시 아래 남선교회 전국연합회의 기관지로 1977년 11월 25일 창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목회자신문은 ‘생명목회의 풍성함을 나누는 신문’이라는 사시아래 지난 1995년 4월 15일 목회자와 함께 한다는 취지로 발행됐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장로와 목사의 목소리를 따로 내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와 장로들의 목소리를 함께 어우른다는 취지에서 △목사장로신문이 발행되고 있으며, △목회자사모신문은 지난 2002년 ‘목회자사모를 살린다 목회자 자녀를 살린다 목회자 가정을 살린다’는 정신으로 창간되어 목회사역의 동반자로서 사모의 역할을 다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정확하고 충분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내일의 비젼을 담아 사모님들께 제공함으로서 활력 넘치는 목회 내보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장로교여성신문은 격주간 발생되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소속 신문으로 현재 기독공보와 통합을 추진해 영향력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예장통합교단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타교단에 비해 교단지를 제외하고도 교단에 관련된 신문의 종류가 넘쳐나고 있다. 예장합동측의 경우 교단지인 기독신문과 야당지라 할 수 있는 기독신보 정도가 있으며, 예장고신의 경우 교단지인 기독교보와 월간고신이라는 월간지가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통합의 경우에는 교단지 외에도 6개의 신문이 교단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발행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변화지 않으면 버림 받을 수밖에 없다”
김태범 목사는 지난 기독공보 지령 2500호 감사예배에서 “정보가 귀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면서 “변화지 않으면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전했다.
숫자상으로 늘어나는 신문들이 모두 새로운 경향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신문들의 틀 가운데서 그 틈을 비집고 생겨나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기존의 방식만을 따라가는 것은 교계 신문의 질적인 향상 면에서 전혀 새로움을 창출해 내지 못한다. 앞서 통합측 신문사들에서 보았듯이 같은 교단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기관에 속해 목소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교단의 중복된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교단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중복되어 들어가 있으며, 논설위원과 편집위원의 경우를 보더라도 같은 사람이 중복되는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만큼 전문성을 가진 집필진을 찾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같은 방향성을 지향하다보니 인물이 겹치는 것은 당연지사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교단 안에 여러 신문이 난재하다 보니 거의 광고 수익으로 운영된다고 할 수 있는 신문사 간의 경쟁은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일정한 광고금액이 정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기 신문사에서 유치경쟁을 벌이다보니 자연 금액은 하향 조정되고,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신문사가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질적인 향상도 기대하기 어려워지는등 제살 깍아 먹기 경쟁이 된다. 이러한 교계 신문의 어려움은 지면에 그대로 드러나 독자들의 불만을 사게 되고, 또한 이는 더불어 발전하는 상생(相生)의 관계가 아닌 상사(相死)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볼 때 이제는 기독교 신문들에 대한 교단적 입장을 새롭게 정리할 필요성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기독교 신문사들에 대한 교류나 개방도 신중히 고려해야 할 때 인 것이다.
특히, 통합측의 경우 총회차원에서 적절한 중재와 통합의 과정을 거쳐 과다 경쟁을 막아야 한다.

기독교신문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의해 각각 두 개의 기독교 신문이 1897년 발행된 것이 처음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일반 신문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운운하며 그것에만 끌려간다면 언젠가는 문을 닫아야하는 현실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바람직한 교계 신문이란 목적에 맞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는 것이다.
교계신문은 그 존재성에 있어서 다른 신문과 다름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단순한 정보를 주며 독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문서선교’. 즉,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 자신의 배불리기에만 급급하여 멀리 하늘을 보지 못하고 이 땅에서의 영리를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지양하고, 정보의 공유와 제대로 된 비판과 난립으로 인한 경쟁에서 벗어나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인지해야 할 것이다.
손진화 기자

200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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