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 줄이기.버리기 (안상진 장로 부산영락교회 에이맨 출판사 대표 )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의 의식주면 자족(自足)할까? 사도바울은 빌립보서신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고 갈파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무전여행(無錢旅行)이 유행했었다. 비상금 몇 푼만 호주머니에 넣고, 주로 도보로 여행을 해야하니 배낭 속에는 긴요긴급한 물건 만 챙겨 넣어야 어깨에 부담이 적다. 한 주간 혹은 보름 정도 탐방코스를 정하고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버스나 트럭을 얻어 타고, 밥은 주로 얻어먹고, 여의치 않으면 한적한 곳에 텐트를 치고 취식을 하고, 잠은 남의 집 사랑방신세를 졌다. 학생들이었기에 마을 이장님들에게 많은 신세를 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는 인심이 후한 그런 낭만도 가능했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리 많은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큰교훈을 배우기도 했다. 나는 월 여전 분수에 맞추어 살아보려고 아내와 의논하여 낙동강 하구 옆의 자그마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금까지 살던 집의 거의 절반 크기 밖에 안 되는 곳이므로 가구며 옷가지며 책들이 들어갈 곳이 협소해 무엇보다 먼저 버릴 물건들의 목록부터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책도 절반은 없애야 했다. 그간 지식의 소유욕으로 일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보지 않으면서 늘어난 책꽂이의 책들을 선별하여 버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깝다고 생각하면 한 권도 버릴 수 없는 책들이지만 눈 딱 감고 정말 과감하게 두 리어카분의 책을 버렸다. 다음은 장롱 속에 일년에 한 번도 입지 않으면서 쳐박혀 있는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그래도 옷가지들은 재활용이 되어 필요한 다른 누군가가 입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책만큼은 아깝지 않았다. 멀쩡한 서랍장은 문밖에 내놓기가 바쁘게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다. 이렇게 모든 세간을 절반쯤 줄이고 버리니 비로소 운신할 공간이 생겨났다. 피아노도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여 처분하려고 중고취급점에 의뢰했더니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 차라리 인심이나 쓰려고 어디 줄만한 곳을 찾고 있다. 이곳 살이가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돼 좀 불편하고 갑갑한 것 같았는데 이제 적응이 되고 익숙해지니 편안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으는 것도 쉽지 않지만 줄이고 버리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몰랐다. 우리는 왜 소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가져도 가져도 성이 차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이렇게 줄이고 버려도 사는 데는 아무 불편한 게 없고 홀가분한데 괜한 소유욕에 얽매여 그간 쌓고 모으면서 목마르게 살아 온 것이 부끄럽다. 곧 둘째가 결혼하여 분가하고 나면 회갑을 넘긴 초로의 두 내외가 살아가는데 뭐 큰집이 필요하며, 잡다한 가구며 세간이 필요하겠는가. 다만 이제부터는 외형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온갖 삶의 분진(粉塵)까지도 줄이고 버리며 살아갈 것을 소망해 본다.

200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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