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주님을 향한 영혼의 목소리 테너 방현호


방현호 집사
방현호 집사(한샘성결교회)는 지난 12월18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독창회를 가졌다. 9년동안 이태리에서 공부한 당당한 실력파지만, 주변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함을 갖춘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10년전만 하더라고 그냥 재능있는 한 청년에 불과했던 그였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주셨다고 한다. 굴곡많았던 그의 인생을 들여다 보자. 하나님을 알게되고.. 방현호 집사는 경남 김해의 한 농촌에서 축산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2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방 집사가 처음 하나님을 알게된 계기는 집 근처에 외가댁이 있었고 외가댁 식구들이 독실한 믿음의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간혹 주일에 빠질 경우 혼을 낼 정도로 외가댁 식구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이모는 지금의 방 집사의 신앙을 갖게 하는 신앙의 선배같은 역활을 해 왔다. 기도와 감사를 알게 했고, 언제나 이모와 이모부가 신앙의 모델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김해제일성결교회가 모 교회인 방 집사는 어릴적부터 장난기 많은 소년으로 성장해 왔다. 비록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을 일찍부터 알게되고, 지금 천직으로 여기고 있는 성악도 교회 찬양대를 시작하면서 꿈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노래에 재능이 많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학교와 교회에서 주최하는 여러 대회에서 상을 많이 타게되자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악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연단을 위한 시련을 고3이 되었을때 성악 실력이 많이 나아졌다는 소리를 자주들었던 방집사는 스스히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지도하는 선생님도 대학진학을 100% 확신했고, 학교나 가정 어디에서도 자신이 대학에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대학 실험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시험에 떨어졌다. 성악을 했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재수의 길은 상상조차 힘들었다. 모든 것이 절망이었고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났다. 결국 아버지의 사업(축산업)을 도와주다가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방집사는 “그때 저희 어머님의 눈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시험에 실패한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버지 일만 묵묵히 돕고 있었고, 이를 어머님이 제일 마음 아파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가장 큰 위안이되었던건 하나님께서 자신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언젠가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성악을 공부하겠다는 소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창원에 위치한 중앙기업이라는 운송회사에 취직하게 됐다.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있었기 때문에 운전을 통해 빨리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할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그 회사는 전국을 상대로 운송을 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상하게 시간이 거듭될 수록 공부에 대한 생각은 더욱 절실해 졌다. 기회가 되어 대한항공 정비파트에 시험을 보게되고 입사를 하게 됐다. 이때 방집사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한 사람이 만나게 된다. 자신의 상사인 김복주 집사인데 현재도 대한항공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복주 집사는 당시 기독음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방 집사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방집사 몰래 원서를 접수해 줬다. 결국 김복주 집사의 도움으로 성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 태울 수 있게 됐고, 성악을 계속해서 공부하게 될 수 있었다고 한다. 2년후 기독음대를 졸업하고 교수님의 권유로 수능시험을 쳐서 동아대에 입학하게 된 방 집사는 또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예비하신 유학생활 28세라는 늦깍기 대학생이 된 방집사는 같은 Class고 캠퍼스 찬양과 병원 선교를 하는 ‘달란트’라는 동아리에서 배우자 민수연 집사를 만나게 된다. 민수연 집사도 4대째 기독교집안으로 둘은 믿음속에서 사랑을 키워갔다. 대학 4학년때 결혼한 이들은 1998년 1월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된다. IMF의 여파로 유학생들이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IMF전에 약속한 유학비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방집사는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유학이 현실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금방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도 했습니다”라고 전하면서 힘들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로마 한인 교회 한평우 목사를 만나게 해 주었다. 사랑과 말씀을 심어줬고, 방집사에게 확실한 비전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방 집사는 “저는 확실한 간증꺼리가 있습니다. 9년을 유학을 했는데, 정말 많은것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유학 처음와서 경제적으로 힘들며, 시간적으로 힘들때 하나님께서 그때 많은것을 주셨고, 많은 기도를 하게 하셨고, 그때 제일 많이 만나 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잊지않고 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학생활을 하면서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자신이 제일 사랑했던 어머님을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돈이없어 3년 동안 어머니를 뵙지 못해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주를 위해 살리라” 방 집사가 제일 좋아하는 복음송이 있다. “주께서 내길 예비(인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인도)하시네! 이제 하루 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인도)하시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주님을 위해 앞으로 살아가겠다고 방집사는 다짐한다. 젊은날 자신을 연단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 있을것으로 생각하며 늘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간직하면서 오늘도 ‘주를 위해 살리라’는 기도제목을 를 놓지 않고 있다. 신상준 부장 담임목사가 바라본 방현호 집사 방현호 집사는 우리 한샘중앙교회 보배이다. 사람은 사귈수록 부담이 가고 가까이 하기에 불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귈수록 정이가고 신뢰감이 가며 편한 사람이 있다. 방집사는 우리교회에서 총각시절 지휘를 하다가 결혼을 했고 곧바로 부부가 함께 공부하기 위해 이태리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9년 그동안에도 변함없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보내왔고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우리교회로 돌아왔다. 우리교회는 큰 교회도 아니고 그의 명성을 뒤 받침해 주거나 돋보이게 해줄만한 규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수하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다. 예술가의 자존심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의 교만함이 그에겐 없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 섬기는 마음이 아직은 보석처럼 빛나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더욱 빛나 보이고 성도들의 믿음까지 성숙하게 한다 젊은 사람임에도 존경할만한 넉넉한 인품까지 소유하고 있다. 이제 귀국독창회를 가지므로 방현호집사가 여러 지인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음악인으로서 먼저 그 실력을 검증 받았다. 앞으로 그의 노래는 낙심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영혼을 울리는 노래가 될 것이며 믿음 있는 자들에게는 더욱 주께로 가 가게 할 영혼을 새롭게 할 찬양이 될 것이다. 한샘중앙교회 차성훈 목사

20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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