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장막(?) 평양제일의 봉수교회에서 감동적인 예배로 영적인 풍요로움을 맛본 일행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유명한 옥류관으로 향했다. 우선 멀리서 보는 옥류관의 자태는 규모가 대단한 한옥식 건물이었다. 푸른 기와 지붕으로 덮여진 2,3층의 여러동이 연결된 아름다운 건물은 대동강변의 절경을 한껏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에 1만여 명이 드나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양시민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이나 지방에서 출장온 분들도 거쳐가는 맛의 명승지란다.
냉면국물 맛에 도취된 일행은 쟁반을 추가하여 맛있게 2인분을 먹어 치웠다. 독특한 국물 맛은 김정일 장군이 조리법을 직접 가르쳐 주었기에 어느 식당에서도 같은 맛을 낼 수 없다고 김정일 장군을 치켜세웠다.
대동강변에 우뚝 솟은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보는 평양의 전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인민 대학습장과 김일성 광장과 주체사상탑 사이로 대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저 멀리 능라도 너머로 모란봉이 병풍처럼 펼쳐 있으며 그 아래로 15만 명을 수용하는 5.1노동 기념관, 105층의 유경 호텔, 고려호텔, 우리나라에서 가장먼저 건설된 대동강 다리, 이 모든 것이 한 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평양에서 묘향산까지는 140km의 고속도로가 잘 닦여져 있었다. 묘향산에 도착할 때까지 마주 오는 차량은 2대밖에 볼 수 없었고 사람들도 고속도로를 왕래하고 있었다. 산자락에는 규격화된 단순한 집들이 펼쳐져 있었고 동네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는 이삭을 줍고 있는 듯한 여인이 간혹 눈에 띄기도 하였다. 나뭇짐을 지고 가는 사람, 안고 가는 사람도 간혹 보이고, 너댓명이 삽과 괭이를 사용하여 물로 파인 농로를 고치는 모습, 길을 두고 논밭을 질러가는 사람, 간혹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소달구지도 한두 번 보였다. 그러나 140km를 가는 동안 농촌주변에는 단 한 대의 자동차도 볼 수 없었고 큰길에서 농촌까지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나 시멘트 도로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릴 때 1950년대의 우리농촌의 모습이 이러했다고 기억된다. 간혹 읍이나 작은 시 같은 동리는 죽은 듯이 고요했고 검회색빛의 공장도 있었으나 전기사정 악화로 거의 가동이 중단된 상태라고 하였다. 큰산은 중턱까지, 작은 산은 산꼭대기까지 계단식 농토로 개간되어 있었고 소나무 숲은 거의 볼 수 없는 민둥산이었다. 수해로 파괴된 도로나, 농토가 너무 많아 나무를 심어 산을 푸르게 하면 수해를 방지하고 한해를 완화할 수 있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김정일 장군께서 산에 있는 잡목을 다 베어내고 쓸모 있는 좋은 수종으로 대치하고 있는 중이라고 조직 부장은 힘없이 설명했다. 2시간쯤을 달려 5시 반쯤 되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농촌집 굴뚝에는 간혹 흰 연기가 보이고, 촛불인지 호롱불인지 밝지 않은 불빛이 보이기도 하였다.
오후 6시쯤 묘향산 향산 호텔에 도착하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영산 묘향산 기슭에 자리한 향산 호텔은 정삼각형 모양의 아름다운 특급 호텔이다. 어두컴컴한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지 않아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른 체 계단 난간을 잡고 안내원을 따라 5층까지 숨바꼭질을 하듯 숙소를 찾았다(?). 평양보다 훨씬 전기사정이 나빴다. 산채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나에게 서기장은 어디 몸이 불편하냐고 물었다.
평양을 떠나 140여km 농촌의 비참(?)한 광경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한없이 불편하고 허전함을 느꼈다. 조그만 땅 남과 북이 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같은 동족이면서 남쪽은 전기가 남아돌고 있는데 북쪽 동포는 흑암에서 살아야 하는가? 남쪽은 살빼기와 전쟁을 하고 있는데 북한 주민은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음을 직감하니 기운이 쭉 빠졌다. 정신이 멍하고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이곳에는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장군에게 세계 160여 개 국의 국가원수와 저명인사들로부터 보내온 20여만 점의 선물을 전시해 좋은 곳이다. 산을 뚫고 건축된 2만여평의 전시관은 대단하였지만 이곳에서도 어려운 전기 사정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을 제외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내온 선물들과 에이스 침대 사장, NCC총무, 문익환씨 등이 보내온 선물도 눈에 띄었고, 현대자동차 정주영 회장이 보내온 다이너스티 리무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김일성과 같이 항일운동을 했다는 중국인 眞來가 선물한 「남북통일 춘추대업」이란 표구가 이색적이었다고 할까? 「북남」이란 글과 말을 많이 보고 들었는데 「남북」이란 글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묘향산 유적지 보현사는 북한 제일의 불교유적지이며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이 여러 번 다녀간 곳이다. 서산대사의 신사가 있고, 팔만 대장경의 인쇄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법당 앞마당의 400년 묵은 뽕나무 아래서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키가 작은 오경우 서기장에게 묘향산의 사깨오가 되자며 한바탕 웃기도 하였다.
저 멀리 눈 덮인 묘향산 비로봉을 바라보며, 언젠가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 단풍으로 붉게 물든 묘향산의 산행을 기대하며 평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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